[이정식 칼럼]4·19혁명이 주는 교훈
[이정식 칼럼]4·19혁명이 주는 교훈
  • 충청매일
  • 승인 2021.04.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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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솔문학작가회 수필가

[충청매일] 4·19혁명은 지금부터 61년 전 1960년 자유당 정권이 3·15 정·부통령 선거에서 불법 부정선거를 자행함으로서 이에 격분한 학생들의 항거가 발단이 되어 일어난 시민혁명으로 자유당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반정부 민주 항쟁이었다.

4·19혁명 발생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 초대 대통령 장기집권을 위한 정·부통령직 발취 개헌(1952), 초대 대통령 3선제 개헌(1954) 등 정치 파동을 야기하면서 영구집권을 꾀했던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의 12년간에 걸친 집권을 종식 시키고 제2공화정의 출범을 보게 된 역사적 전환점이였다. 초기에는 일반적 혁명으로 규정하여 4월 혁명으로 불렀으나 5·16군사정변 이후 의거로 규정했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혁명으로 환원 되었다.

4·19혁명의 발단 경위는 6·25전쟁 이후에 문맹자가 국민의 80%나 되고. 사회적 경제적 불안 속에 자유당 독재정권에 의한 정치적 혼란으로 민생이 어려운 시기였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4활투표, 올빼미투표, 샌드위치개표, 피아노투표, 그 이름도 알 수 없는 전대미문의 부정선거를 공공연히 자행한 것이다. 이에 격분한 학생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나던 중 마산 김주열 학생의 시체가 최루탄이 눈에 박힌 체 바닷가에서 발견된 것이 자극제가 되어 전국으로 확산 되었다.

이에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했지만 군은 중립을 지켜 탱크를 학생과 군이 같이 타고 시가행진을 했다. 전국대학 교수들의 대통령 하야 시국선언 발표와 시위에 이어 학생 시민들의 데모는 더욱 가열되었다. 4월 26일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의 특유한 떨리는 목소리로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로써 12년간의 자유당 독재정권 의 종말을 맞게 된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했다. 4·19혁명은 선거가 공명하지 못해서 일어난 것이다. 이 거룩한 혁명으로 전국 185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되었으며 부상자도 4천여 명이 발생 되었다. 4·19혁명이 의미하는 것은 첫째, 4·19는 우리 국민의 민주 의식의 발전과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진통이요, 자기투쟁이라 볼 수 있다.

둘째는 4·19혁명은 공권력의 횡포에 대한 민권(民權)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 원리가 실현된 것이며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은 존속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긴 것이다.

셋째, 4·19혁명은 1919년 3·1독립운동과 1926년의 6·10만세 광주학생 운동의 강한 저항의식과 열렬한 애국심을 발휘한 빛나는 전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4·7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했다. 21세기 디지털 문명시대, 서울·부산 시장의 성범죄로 발생한 보궐선거였다. 선거 결과는 서울18.3%, 부산 28.3%의 큰 차로 여당이 참패를 했다.

비록 지방선거지만 80%의 가까운 유권자가 여당을 외면한 이유로 집권 세력의 실정(失政)을 들고 있다. 이 정권의 상징으로 부르는 내로남불과 불공정, 파렴치, 무능, LH사태와 부동산3법 등 오만한 정책에 대해 준엄한 심판이 내린 것이라고 본다. 한 번의 보궐선거를 가지고 요란을 떤다고 비판할지 모르나 민심의 흐름을 보여주는 엄연한 현실이다. 4·19혁명 때나 4·7재보궐선거에서 시대는 크게 달라도 민주이념과 사회정의 실현은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라는 점에서 정치 지도자들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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