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충청매일] 오세영 시인은 ‘4월’을 가리켜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 4월 부분>’라고 했다. 시인의 말대로 4월은 정말 푸르게 빛을 내며 우리 곁에 있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초록색이 강물을 이룬다. 아파트 놀이터에 서있는 나무도 어느새 초록색이고, 무심천 제방에 심어진 버드나무도 그 작은 잎들이 초록으로 이어져 있다. 가로수도 초록이고 먼 산도 온통 초록 일색이다.

초록을 보면 어떤 소망의 꿈틀거림과도 같은 것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용솟음치는 게 느껴진다. 초록을 보면 왜 그런 감정이 일어날까?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대지에 봄이 찾아오고, 벌거벗은 나무에 잎이 돋는 자연현상을 보면서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일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말라비틀어져 버린 것 같은 가지에서 거죽을 비집고 새 생명을 밀어내는 잎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바람 같은 것이 마음속에 꿈틀거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의 일들이 이 푸른 4월의 봄처럼 새롭게 변화했으면 싶을 때가 있다. 겨우내 꽁꽁 얼어 있던 땅이 녹고 숨죽이고 있던 생명이 기지개를 펴듯 우리가 사는 사회도 그런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런 소망들이 모여서 어떤 변화를 바라는 스크럼이 짜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 4월에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을 바라는 우리 민족의 강렬한 소망이 모이고 모여 마침내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된 것이니, 4월은 소망이 모여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달이지 않을까 싶다. 또, 나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정신적 기초가 된 4.19 혁명일 역시 바로 같은 달에 있음도 주목한다. 눌리고 눌린 민심이 마침내 거대한 변화를 이루어낸 달이 바로 4월이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혁명적인 일에 매진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계절이 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반드시 이루어내겠다는 처절하고도 간절한 소망이 마침내 빛을 본 순간, 눈을 들어 바라보니 천지는 푸르게 빛나는 강물이었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오세영 시인은 앞서 인용한 같은 시 ‘4월’에서 ‘우르르 우르르 /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 돌아보면 문득 /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이라고 쓴 게 아닐까? 격정의 시간을 지내고 문득 돌아보니 천지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과 같은 아름다운 계절이더라고 느낀 것은 아닐까?

이제 임시정부 수립도 4·19 혁명도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우리에게 남아있지만, 사방에 초록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 세상의 변화를 보면서 나에게는 지난 겨울처럼 찌들리고 묶은 때는 없었는지 반성해 본다. 우리 사회에도 정말 고쳐야 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터무니없는 묵은 욕심처럼 감추고 숨기려고만 하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꿔야 아픈 상처도 치유되고, 새 생명도 탄생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4월의 초록 앞에 자못 숙연해 짐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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