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한바탕 보궐선거의 소나기가 지나갔다. 아쉬운 사람도 있고 통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적폐 청산이냐, 정권 심판이냐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했고, 국민은 자신들의 옳은 선택을 했다. 어떤 선택이든 일방적으로 옳고 틀린 것은 없다. 모두가 옳으면서도 또 옳지 않다. 내가 선택한 쪽이 옳으면서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과에 따라 마음이나 신념이 흔들릴 수 있고, 그 결과가 내 삶의 일부를 집어삼키도록 허용하게 된다.

아무튼 선거 결과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유독 눈에 띄는 것이 20~30세대의 선택이었다. 젊은 층이기에 진보적 선택을 더 많이 했을 거라는 예상과는 반대였다. 일각에서는 철이 없다, 세상을 모른다, 정의보다 돈을 중요시한다는 등의 쓴소리를 한다. 그런데 어쩌랴? 우리의 자녀들인 것을.

20~30대 청년, 또는 청소년의 문제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은 대부분 ‘철없음’이다.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정치에는 무슨 관심이냐, 담배와 술이 웬 말이냐, 좋은 대학을 가야 성공한다 등의 잔소리를 한다. 그런데 이 잔소리가 정말 옳은 것일까? 부모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자란 자녀가 어른이 된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까? 이 사회적 규범(?)은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일까?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고민이 없이, 누가 왜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는 규범 안으로 들어오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청소년 ‘비행’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의 문제를 경제적 원인으로만 인식하고, 경제적 지원으로 풀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혼하는 청년들에게 주택과 일자리를 주고, 신생아를 낳으면 돈과 선물을 준다. 고마운 일이지만, 여전히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꺼려 한다. 경제적 문제로 보아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경쟁을 통한 성공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두는 한(사회문화) 이러한 사회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자녀들을 닭장 같은 학교와 학원에 몰아넣고서 몸과 정신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는 것은 모순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 ‘잘사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사회문화에서 정의와 상생과 포용을 바라는 것은 콩밭에서 팥이 나기를 바라는 꼴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경제(결국 돈) 성장’을 최고의 가치관에 두면서 불평등, 불균형, 저출산,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것도 모순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과 경쟁에서의 승리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그런 사람 중에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하고(또는 이웃 자녀의 서울대 입학을 부러워하거나),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주식이나 아파트를 사며, 자연과의 공존보다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 놀랍지만 사실이고,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어른들의 이 모순적인 삶을 보고 자란 젊은 세대가 ‘철없게’ 자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닌가? 자녀들은 부모의 모순적인 삶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부모의 삶이 모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주로 청소년기에) 갈등하고 방황한다. 반항을 통해 그 모순에서 뛰쳐나온 자녀는 오히려 다행이지만, 순종만 하는 자녀들은 평생 모순의 덫에 갇혀서 살게 된다. 이런 사회적 문화의 성찰 없이 경제만 강조하는 세태가 안타깝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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