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어제는 산들바람이 봄을 실어 오더니 오늘은 봄비가 슬그머니 봄을 알려 깨운다. 땅 속 생명체들에게 생수를 주고 새싹을 틔우려 힘을 쓰는 만물에게 톡톡 탁탁 용기를 북돋운다. 나는 농막 처마밑에 앉아 봄비 오는 소리를 듣는다. 평온하다.

나는 겨우내 틈만 나면 농막을 만들어 꾸미는 데 매달렸다. 농사를 짓는 데 편하도록 밭 근처에 간단하게 짓는 농막이면 농막용 컨테이너만 놓으면 간단했다. 하지만 농막을 지으려 했던 나는 농사용 농막이 아니라 자연 속 삶의 안식처를 마련했나 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연인을 꿈 꾼다고 한다. 왜 자연인이 되고 싶을까. TV에 방영된 자연인들은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인 성취욕을 내려놓고 자유인으로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이다. 그 삶에는 개인적인 욕구의 충돌과 사회적 압박의 부딪힘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의 도피도 담겨 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으며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이 생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나름 성공한 지인이 “성공을 했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어 사는 재미가 없다. 사람은 지지고 볶아도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살아야….”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가족을 위에 열심히 매진하던 기러기 아빠가 가족의 말 몇 마디에도 소외감으로 비틀거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모임에서는 ‘총무가 참 잘한다’는 회원들의 칭찬에 그 총무는 고래가 춤추듯이 올인하여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 “사나이는 기분에 죽고 기분에 산다”라고 호언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세상살이는 이렇게 어우러짐이 필수인데 어떤 이는 모임을 떠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예 사회를 떠나 숲속 자연인으로 산다. 아마도 그들은 지독히 어우러짐이 절실했을 것이다. 부부 부모자식 친구 회원 등의 어우러짐에는 사랑 이해 칭찬 나눔도 있지만 어쩔 때는 적당한 거리와 대립도 존재한다. 이러한 대립은 비난과 반목을 동반하기도 한다. 비난과 반목은 아프다. 견디기 힘들다. 벌떡 벌떡 밤잠을 못 자게 한다. 그러나 이 고통도 어우러짐의 과정이다. 하지만 떠나는 그들은 어우러짐이 당장 너무 절실하여 차라리 모든 것을 내려놓았나 보다.

사람 마음은 묘하다. 자신의 철학과 삶의 방법은 그대로 있는 데 외부의 칭찬과 비난에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 그에 더해 각자의 욕망을 채우려 뺏고 빼앗긴다. 아픔은 더 폐부를 찢는다. 사회적인 성취와 압박도 개인의 욕구도 훌훌 벗어 던지고 싶다. 그러나 쉽지 않다. 책임져야 할 자식도 있고 배우자도 있다. 사회적인 책임과 역할도 있다. 제일 쉽지 않은 건 나의 마음이다. 하여 자연인은 로망이다.

법구경(法句經)에서 “숲속은 즐겁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지 않는 곳에서 탐욕을 떠난 이들은 즐거우리라. 그들은 감각의 쾌락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라고 했다. 이 구절의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세속적 욕구의 다툼을 떠나 모든 것을 품는 자연 속에서의 행복을 공감한다. 자연의 품이 그립다.

회색 빛 도시 틈에서 그 자연의 품을 찾으려 겨우내 농막에 매달렸다. 이제 봄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새싹을 마중한다. 영산홍 어린 꽃잎과 벗이 되어 속삭인다. 자연은 부족한 나를 칭찬도 비난도 않고 그대로 그렇게 품는다.

나는 이대로 이렇게 느림보 걸음으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부족함을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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