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자신의 몸 하나도 간수하기 어려운 위급함에 처하자 농민군들은 부축하고 있던 동료를 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어떻게든 좁은 골짜기를 벗어나 노루목을 통과해야만 도망이라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두어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노루목 입구에는 말에 탄 안핵사 연창겸과 창칼로 무장한 지원군이 버티고 있었다. 좌·우군에 이어 중군도 궤멸될 지경에 이르렀다.

“대장님, 저희가 앞을 트겠습니다!”

이중배가 별동대를 거느리고 농민군의 후미에서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이중배가 거느리는 별동대가 노루목 입구를 막고 있던 관군에게 달려들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별동군의 공격에 관군도 버티지 못하고 길을 열었다. 물을 가두고 있던 보가 터지듯 농민군들이 봇물처럼 노루목을 빠져나갔다. 안핵사 연창겸의 토벌대가 농민군의 뒤를 추격했지만 곧 날이 저물자 포기를 하고 물러섰다.

천신만고 끝에 농민군들이 와룡산성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보름이 가까워지는지 달이 등잔을 켜놓은 것처럼 밝았지만 와룡산성으로 올라가는 외길은 숲이 울창하여 그믐처럼 어두웠다. 와룡산성은 성루는 없었지만 성벽만은 높고 탄탄해 보였다. 아마 성이 축조된 이후에 누군가에 의해 새로 증축된 것으로 보였다. 성문부터 기존의 성 모양과는 전혀 달랐다. 농민군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하늘에 매달린 조교로 된 성문이 들어 올려진 채 성벽에 쇠줄로 단단히 묶여있어 안에서 열어주기 전에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성 안 고산사라는 절에 누군가가 있을 겁니다요.”

오슬이가 말했다. 농민군들이 소리쳤다. 한참만에야 성벽 위에서 인기척이 났다.

“뉘시오?”

“우리는 농민군이오!”

“그런데 한밤중에 무슨 일이오니까?”

“우리가 이 성을 좀 빌리려고 하외다!”

“여기는 불전이라 아니 되오이다!”

“우리가 매우 다급한 형편이외다!”

“다른 곳을 찾아보시지요.”

그것으로 끝이었다. 성벽 위의 스님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농민군들이 다급하게 불렀지만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농민군들은 밤을 다퉈 걸어 청풍읍성으로 향했다. 청풍읍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농민군들은 초죽음이 되어 팔영루 앞에 다달았다. 청풍읍성의 관문인 팔영루의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이보시오들! 농민군대장이 돌아왔소이다. 어서 성문을 여시오!”

이중배 별동군장이 팔영루를 지키고 있던 성벽 위의 사람들에게 문 열 것을 일렀다.

“어떤 놈들이 꼭두새벽부터 문을 열라 말라 하느냐?”

“이놈들! 우리는 충주읍성 전투에서 돌아온 농민군이다. 어서 문을 열어라!”

사노군장 양태술이가 핏대를 올리며 버럭 화를 냈다.

“역도 놈들이 제 발로 호랑이굴로 찾아들었구나. 아직도 여기가 네놈들 소굴인 줄 알았더냐? 어제 충주에서 관군에게 몰살을 당했다고 하더니 아직도 남은 잔당이 있는가보구나? 네 이놈들 날이 밝으면 곧 토벌대가 당도할 터이니 성문 앞에 그대로 있거라!”

청풍에서도 이미 농민군의 참패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관재 청풍부사와 관속들을 지키며 청풍읍성의 방비를 위해 남겨두었던 농민군들도 충주로 떠났던 농민군이 몰살했다는 소문을 듣고 곧 닥쳐올 후한이 두려워 모두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청풍도 이미 관군의 수중으로 넘어간 것이 분명했다. 농민군지도부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팔영루 문 앞에 주저앉아 있다 잡혀갈 수는 없었다. 농민군지도부와 농민군들은 다시 몸을 일으켜 망월성으로 이동했다. 청풍읍성 동문 밖 시오리 쯤에 있는 망월성은 이름만 산성일 뿐 성이라 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망월성은 물태리 망월산에 있는 아주 작은 산성으로 남한강 물길을 오르내리는 조운선과 상선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망루 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군사들이 머물며 숙식을 하고 전쟁을 하는 따위의 시설은 전무했다.

망월성에 도착한 농민군지도부는 남은 농민군을 파악했다. 하지만 일일이 확인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농민군의 주력인 좌군·우군·중군, 그리고 특별군인 별동군·초군·사노군·기별군·보급대 등 모두를 합쳐야 남은 병력은 이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충주읍성으로 떠날 당시 이천 명이 웃돌았던 대부대를 며칠 사이에 모두 잃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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