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⑥ 망월성에서 최후를 맞다

“우 대장, 후퇴를 합시다. 이곳에서는 관군을 대적할 수가 없소이다!”

염바다들에서 기병들에게 대부분의 농민군을 잃고 마지막재로 후퇴한 좌군장 이창순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벌판에서는 기병과 포수를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힘을 쓸 수 없는 험한 지형으로 옮겨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주력군의 대부분을 잃고 남은 병력도 절반에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별동군장 이중배도 좌군장의 의견에 동조했다.

“어디로 갔으면 좋겠소?”

“대장님, 월악산 영봉 부근 와룡산에 오래되어 잊혀진 산성이 하나 있습니다요. 인근에서는 와룡산성이라고도 합니다요. 앞으로는 성천이 흐르고 뒤쪽으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어 들어가는 골짜기 외에는 벼랑이라 아무리 조련 잘된 관군이라도 맨몸으로는 도무지 오를 수가 없습니다. 성 안에는 고산사라는 절도 있어 당분간 식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만약 위급한 일이 생기더라도 청풍과 가까운 곳이니 도움을 받기 쉽지 않을까 합니다요.”

차대규 중군장의 휘하인 기별군 소속 오슬이가 와룡산성을 추천했다. 오슬이는 북진여각의 동몽회원이었다. 그는 발이 빨라 여각 산하 객주들에게 온갖 소식을 전하던 연락책이었다. 어려서부터 남한강 일대를 쏘다녔던 터라 인근 일백여 리 안의 지형은 모르는 곳이 없었다.

“오슬이 얘기라면 생각할 것도 없소이다. 우리 농민군의 사정으로는 거기가 천혜의 적지요. 그곳으로 갑시다!”

오슬이의 설명을 들은 차대규 중군장이 우 대장의 결정을 독촉했다.

“좋소이다! 그럼 그곳에서 우리의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공세를 폅시다!”

우 대장이 와룡산성으로 갈 것을 결정했다.

와룡산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육로와 배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농민군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은 무리였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그러했지만, 부상이 심해 걷지 못하는 농민군부터 배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육로로 가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염바다들에 진을 치고 있는 관군들의 눈도 피해야 했고, 용케 벗어났다 하더라도 와룡산성으로 가려면 충주산성과 대림산성 사이를 지나야 했다. 농민군지도부에서는 일단 중군의 보급대를 시켜 부상병부터 마지막재 너머 꽃바위나루로 이동하고 나머지 농민군은 해가 넘어간 뒤 야음을 틈타 육로로 가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재를 지킬테니 보급대는 부상병을 인솔해서 어서 나루로 출발하시오!”

중군장 차대규가 보급대의 출발을 서둘렀다. 그러나 마지막재를 넘어갔던 보급대는 새참도 되지 않아 곧바로 넘어왔다. 꽃바위 나루는 농민군의 퇴로를 막기 위해 관군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고, 농민군들이 타고 왔던 모든 배들도 밑창에 구멍을 내 가라앉혀 놓았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천상 육로로 가는 길밖에 없었다.

“우 대장, 부상당한 사람들을 데리고 밤길을 가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제가 여기서 별동대를 데리고 관군의 시선을 돌릴 테니 그 틈을 이용해 산길로 빠져나가십시오!”

이중배 별동군장이 별동대를 고개 아래 염바다들로 진격시키며 곧 공격을 할 것처럼 위장을 했다. 별동대는 쉬지 않고 함성을 지르며 진격과 후퇴를 거듭했다. 그 사이 농민군들은 산길을 이용하여 무사히 두 개의 산성을 지났다. 이제 노루목을 지나면 청풍 관할의 땅이었고, 한수를 지나 서창에서 쇠시릿재를 오르면 농민군들이 집결하기로 한 와룡산성이었다. 숨을 죽이며 잔뜩 긴장했던 농민군들이 큰 고비를 넘기고 조금은 편안해진 기분으로 노루목을 향해 행군을 계속했다. 말이 행군이니 그건 행군이 아니었다. 부상당한 동료들을 부축하고, 등에는 바랑을 메고, 어깨에는 농기구를 멘 모습이 영락없는 유랑민들 꼴이었다. 해가 산등성이 위에서 뉘엿거렸다. 오른쪽 벼랑 아래로 붉게 물든 달래강이 눈을 어지럽혔다. 농민군들의 추레한 행색과 발걸음 소리만 아니면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 순간 왼쪽 산등성이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벌떼처럼 농민군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관군들의 매복이었다. 피할 곳도 없는 협곡이었다. 날아드는 화살에 농민군들이 쓰러졌다. 산 위에서는 항아리만한 돌들이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굴러 내려왔다. 돌에 맞은 농민군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구르는 돌과 함께 절벽 아래 강물로 떨어져 내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