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창수 좌군장을 따라 제 발로 본진 쪽으로 퇴각하는 농민군은 모두 합쳐야 일백여명이 되지 않았다. 불과 한식경 남짓한 시간에 좌군은 모두 궤멸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하익수와 농민우군이 다친 좌군들을 본격적으로 수습하기도 전에 총소리가 들려왔다. 농민우군이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관군을 앞세우고 포수들이 염바다들 서쪽 끝에서부터 대오를 이루며 다가오고 있었다. 하익수가 이끄는 농민우군들도 이들과 맞붙기 위해 앞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농민우군은 일천여 명에 육박했지만 관군은 오십 명이 넘지 않았다.

“저들은 수가 우리보다 월등히 적지만 화승총을 가지고 있소! 선두는 총알을 막을 수 있는 방비를 하시오!”

하익수 우군장이 관군의 동태를 살펴보고 포수들의 총질에 대비해 방비할 것을 일렀지만 농민군들은 이를 막을 만한 그 무엇도 없었다. 거기에다가 염바다들은 나무 한 그루, 바위 한 덩어리 없었으니 맨몸으로 저들의 총알을 막아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농민군들은 불안했다. 관군과 포수들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그렇다고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관군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흐트러짐 없이 다가왔다. 이제는 서로의 낯빛까지도 보일 정도였다. 먼저 관군대열에서 일제히 총소리가 났다. 농민군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총소리에 놀란 농민군들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비명소리가 점점 늘어났다.

“죽더라도 일어나 싸우다 죽자!”

초군장 천만이가 농민군들을 독려하며 벌떡 일어나 낫을 들고 관군을 향해 달려갔다. 그를 따르던 초군 십수 명이 함께 그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러나 관군에 닿기도 전에 총을 맞고 쓰러졌고, 설사 관군이 있는 곳까지 다가간 초군도 날렵하게 휘두르는 군사의 칼날에 맥없이 쓰러졌다. 천만이도 손에 든 낫으로 한 번 찍어보지도 못하고 관군의 칼에 수없이 찔려 죽고 말았다. 초군은 염바다들에서 전멸했다.

“이러다 모두 죽는다! 모두들 일어나 한꺼번에 달려들어라!”

하익수 우군장이 소리쳤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 성치도 않은 몸을 끌고 장도를 높이 든 채 관군을 향해 걸어갔다. 총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앞만 보고 걸었다. 하익수 우군장은 목숨을 내놓은 사람 같았다. 또 총소리가 났다. 하익수 우군장의 허리가 꺾이며 쓰러졌다. 엎드려 이를 지켜보던 농민군들 입에서 탄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쓰러져 한동안 꼼짝하지 않던 하익수 우군장이 조금씩 움직였다. 농민군들 입에서 탄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익수 우군장이 겨우 몸을 지탱하고 일어나 다시 관군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여러 발의 총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하익수 우군장의 이마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며 동시에 앞으로 푹 꼬꾸라져 움직이지 않았다.

“관군들을 모두 죽이자!”

하익수 우군장의 최후 모습을 본 농민우군들이 분기탱천하여 한꺼번에 일어서며 벌떼처럼 달려 나갔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농민군들의 기세에 밀린 관군들이 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농민군들이 더욱 기세를 올리며 관군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그것은 관군의 전술이었다. 하익수 우군장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분노에 사무쳐 관군의 뒤를 쫓던 농민군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지막재의 농민군 본대와도 너무 멀리 떨어졌고, 안핵사 연창겸의 지원부대와 충주읍성의 관군이 연합한 토벌군이 쳐놓은 그물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농민군이 앞만 보고 내닫는 사이 일백여 기병들은 그들의 시선을 피해 염바다들을 외곽으로 크게 돌아 벌판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퇴로를 막았다. 도망을 치던 관군과 포수들이 갑자기 돌아서며 공격을 해왔다. 동시에 양 옆에 은신해 있던 관군들도 동시에 공격을 해왔다. 농민군들은 관군들에게 둘러싸여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 사방에서 총탄과 화살이 날아왔다. 농민군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농민우군이 당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마지막재의 본대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동안 활과 총을 쏘던 관군들이 뒤로 물러서자, 이번에는 퇴로를 막고 있던 기병들이 산지사방으로 말을 달려 대오를 휘저으며 짐승 쫓듯 농민군들을 짓밟았다. 농민군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말발굽을 피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천신만고로 기마병을 피하더라도 바깥을 싸고 있는 관군들의 창칼에 쓰러졌다.

애초에 될 싸움이 아니었다. 매와 병아리의 싸움이었다. 고도로 훈련된 최정예의 지원군과 관군 입장에서는 이건 싸움이 아니라 땅 위의 물고기를 망태기에 잡아넣는 것과 같았다. 농민군들은 제대로 대항도 못해보고 싸울 의지를 잃고 말았다. 점심나절도 되기 전에 농민군의 주력부대인 좌·우군과 그 휘하의 초군·사노군이 무너졌다. 충주읍성을 공격했던 농민군들은 읍성에서 십여 리 떨어진 염바다들에서 관군에 의해 괴멸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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