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성문을 여시오!”

농민군들이 소리쳤다.

농민들의 외침과 동시에 성 안쪽에서 콩 튀는 듯한 화승총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그리고 문루 위에서 손을 흔들던 사노군들이 일시에 쓰러졌다. 잠시 후 북문 문루 위에 포수들이 나타났다. 포수들이 하늘을 향해 일제히 화승총을 쏴댔다. 마른하늘에서 귀가 찢어지는 듯한 천둥소리가 났다. 북문을 향해 몰려들던 농민군들이 황급하게 물러섰다. 다시 농민군과 관군 사이에 다시 대치가 시작되었다. 잠시였지만 농민군들은 난공불락 같던 충주읍성의 북문을 의외로 쉽게 장악하자 자신감이 생겼다. 관군과 농민군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언제든 공방전은 일어날 수 있었다.

신태원 충주목사는 고민에 빠졌다. 땅만 파던 농군들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농민군들에게 잠시 동안이었지만 성의 일부분을 빼앗겼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농민군들은 자신들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언제든 다시 공격을 해올 것이다. 그러면 수적으로 워낙에 열세인 자신들이 불리할 것이었다. 더구나 농민군들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성문을 빼앗았다. 그렇다면 농민군들의 전술은 점점 더 발전할 것이었고 공격력 또한 강해질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현재 읍성 안의 관군만으로는 도무지 농민군을 막아낼 수 없었다. 공주감영에 요청한 관군의 도움도 당장은 받기 힘든 형편이었다. 신 목사는 농민군을 대했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신 목사가 먼저 우장규 농민군대장과의 단독회담을 요청했다.

우장규 농민군대장과 신태원 충주목사의 회담 장소는 충주읍성 안에 있는 상연지 가운데 있는 정자로 정해졌다. 우 대장이 이중배 별동군장과 십여 명의 농민군을 대동하고 남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갔다. 멀리 불에 타 시커멓게 그을린 북문이 보였다. 우 대장 일행이 남북로를 따라 객사 삼문을 거쳐 목사가 집무를 보는 청녕각 뒤의 상연지 연못의 정자로 갔다. 정자로 건너가는 못 가장자리의 널다리 입구에서 관군이 이중배 군장과 농민군들의 출입을 막았다. 회담이 열리는 정자에는 두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우 대장, 하익수 중군장과 농민대표는 회담이 끝난 후 풀어주겠소!”

신태원 목사가 선심을 쓰듯 먼저 보따리를 풀었다.

“죄 없는 백성을 가뒀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외다!”

우장규 농민대장이 대수롭지도 않게 대답했다. 신 목사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평상심을 찾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어쨌든 서로 간에 오해가 있는 듯하니 방면하겠소.”

“목사 영감이 우리 농민군한테 원하는 건 뭐요?”

“읍성을 둘러싸고 있는 농민군을 해산하고 즉시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목사 영감, 청풍 조관재 부사가 써준 완문을 보았소이까? 그 완문의 내용이 농민군들이 이제껏 목숨을 잃고 다치며 싸워왔던 이유요. 그런데 그에 대한 목사의 답변은 농민군 대표를 옥에 가둔 것이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외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데 어찌 이대로 해산을 하란 말이오?”

우 대장이 신 목사를 몰아세웠다.  

“완문은 워낙에 중차대한 문제라 목사라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소이다. 지금 완문에 대한 답은 공주감영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 그러니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면 완문에 대한 답을 알려주겠소!”

신 목사가 우 대장을 회유하며 즉답을 피했다.

“우리는 평생을 관리들과 양반지주들에게 속아왔소. 그 말을 우리에게 믿으란 말이오? 공주감영의 답이 올 때까지 우린 돌아가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면 답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런데 농민군들이 모든 성문을 막고 있어 벌써 여러 날째 충주읍성이 고립되어 백성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그러니 농민군들은 포위망을 풀고 뒤로 물려 사람들 왕래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시오!”

“알겠소이다. 그건 내 돌아가 상의를 해보겠소이다.”

그러나 그것은 충주목사 신태원의 속임수였다. 신 목사는 하익수 우군장이 완문을 가지고 왔을 때 이미 공주감영으로 파발을 띄워 관군의 파병을 요청 해놓고 있었다. 신 목사의 속셈은 농민군이 스스로 포위망을 풀고 물러나거나, 자신이 요청한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농민군들이 공격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장규 대장이 신 목사와의 회담을 마치고 하익수 우군장을 데리고 돌아오자 농민군 진영은 마치 승리라도 한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농민군들은 잔치 분위기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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