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청풍관아를 점령한 후 사기는 충천합니다.”

“사기가 중한 것이 아니라 끝이 중하지 않겠는가?”

“끝이라니요?”

차대규가 물었다.

“농민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끝이지 뭐겠는가? 그 끝이 보이는가?”

“조 부사에게 고을민들의 고충을 들어주겠다는 완문은 받았습니다.”

“나랏님이 써준 완문도 지켜지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을 한낱 시골 부사가 써준 완문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지킬 뜻이 없으면 종이 쪼가리나 진배없지.”

“사사로운 욕심에서 봉기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고을민들의 전체 뜻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명분 아니겠습니까?”

“명분도 중요하지만 생존의 문제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더한 욕심도 없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끝나는 문제인데 벼슬아치들은 명분에 더 목숨을 거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그게 다 그것인데, 백성들처럼 사소한 것에 매달리는 것을 천하게 여기는 벼슬아치들이 명분으로 포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충주목사가 농민군 대표들을 모두 가두고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나도 들어 알고 있네. 우 대장이 보낸 연통에는 곧 충주읍성을 공격할 것이라고 하는 데 급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겠구먼.”

“바로 그것 때문에 저를 대행수께 다녀오라 했습니다요.”

“지금 바로 코앞에서 난리가 벌어졌는 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일단 소낙비는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 아니겠는가?”

최풍원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임을 은연 중 내비쳤다. 그것은 앞으로 닥쳐올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 북진여각의 운명을 생각한 안전장치였다. 농민군지도부가 처음 모의를 할 때만 해도 최풍원은 타협을 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청풍은 농민군들이 관아를 점령하고 그들의 세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며 눈치를 보거나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우장규 농민군대장은 정중하고도 간곡하게 최풍원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대행수님 잘 알겠습니다!”

차대규가 최풍원의 심증을 읽고 농민군 진영으로 돌아갔다.

“최풍원 대행수께서 수일 내로 통문을 띄워 북진여각 객주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짐배와 양식들, 그리고 보부상들을 농민군 진영으로 집결하도록 하겠답니다.”

차대규 중군장이 우장규 농민군대장에게 최풍원 대행수의 답을 전달했다.

농민군지도부의 움직임도 빠르게 돌아갔다. 청풍관아를 점령하고 난 후 어수선해진 농민군 진영부터 편제를 다시 정비하고 늘렸다. 먼저 농민군의 최정예부대라 할 수 있는 별동군을 삼군 중에서 젊고 날랜 사람을 차출하여 그 규모도 배로 늘리고, 주력부대인 좌군·중군·우군을 재정비했다. 중군 밑의 기별군은 그대로 두고 새로이 보부상들로 구성한 보급대를 신설했다. 나머지 좌군 밑의 초군과 우군 밑의 사노군을 독립시켜 별개의 단독부대로 승격시키고 천만이와 양태술을 각 군장으로 삼았다. 우군은 하익수 군장이 충주관아에 볼모로 잡혀있는 관계로 사노군 양태술이 당분간 우군장을 겸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맨손으로 싸웠던 청풍관아 점령 때와는 달리 농민군들도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청풍관아 병기고를 부수고 별동군부터 무장을 시켰다. 좌우 농민군들에게는 낫·도끼·쇠스랑·곡괭이·살포 등 집에서 쓰는 농기구들 중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들고 나오도록 지시했다. 개중에는 떡메를 들고 나온 사람, 자귀를 들고 나온 사람, 벽채를 들고 나온 사람, 심지어는 작두날을 빼어 메고 온 사람도 있었다. 이도저도 없는 농민들은 홍두깨·방망이·죽창을 들고 읍성 도회장으로 모여들었다. 봉화재 밑 서창마을사람들은 역참을 습격하여 말을 빼앗아 지휘부에 넘기기도 했다. 사흘 만에 도회장에는 이미 첫 도회 때부터 운집해 있던 농민군들과 청풍 관내 마흔여 곳의 크고 작은 마을에서 새로 모인 농민들이 합치니 그 수가 일천오백에 육박했다. 읍리나루에는 남한강 인근의 객주들이 가져온 삼십여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읍성의 도회장으로는 객주들과 보부상들이 길마에 군량을 싣고 줄줄이 들어왔다. 이를 보고 농민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청풍읍성 안은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긴박한 전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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