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충청매일] 아파트 정원에서 봄이 왔음을 일찌감치 알린다는 매화를 보았다. 품위있는 고고한 모습에 반해 한참 동안이나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매화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산수유도 모습을 드러냈다. 앙증맞은 모습이 하도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이제 정말 봄이 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만물이 생동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달력을 고쳐 꽃이 피기 시작하는 이때를 새해가 시작하는 첫 달로 다시 정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물론 현실성이 거의 없는 사견이지만 어쨌든 한겨울인 1, 2월보다 3월은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달처럼 느껴진다. 따뜻한 날씨가 그렇고 온갖 꽃들이 생동하기에 그렇다. 칙칙하고 어두운 겨울에서 벗어나 밝고 환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새 학기를 시작하는 우리의 봄날에 더 많은 애착을 갖는다. 봄이 되면 어린이집을 졸업한 어린 학생은 유치원에 입학한다. 유치원을 졸업한 새내기 초등학생도 의무교육을 처음으로 시작한다.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모두 새봄에 새 학기를 맞아 새롭게 시작한다.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뀌고 선생님도 바뀌는 3월은 그래서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달이다. 그런데 이렇게 새롭게 시작하는 봄날이 언제나 따뜻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어린 아이가 어린이집에 처음 들어가면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그치지 않는 것처럼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어렵고 힘든 일도 있다. 학생들은 학교의 환경이나 친구에게 아직 적응이 안 되어 어설프고 선생님도 새 학기인지라 학생들 얼굴도 익혀야 하고 온갖 종류의 행정업무에 참으로 바쁘고 바쁘다. 새롭고 신나야 할 새 학기에 때 아닌 어려움을 겪어 힘들어 할 때도 종종 있는 것이다. 문득 2012년에 써서 발표했던 나의 졸시 한 편이 떠오른다.

청명절에도 바람은 분다 / 때 아닌 눈보라 몰아치는 / 봄날도 있다 // 온 겨울 견뎌 내느라 / 마르고 헐벗은 가지에 / 마침내 터트린 오랜 기다림 // 교실 앞 산수유/ 울타리에 올라 앉은 개나리 / 느닷없이 흰 눈이 얼어붙어 / 흔들리는 날이 있다 // 그래도 꽃잎들은 / 작은 얼굴을 맞대고 / 손에 손을 잡고 // 천지 가득한 햇살로 / 꽃들을 불러 모은다 / 청명절에도 때 아닌 / 눈보라 칠 수는 있어도 / 언 땅을 견뎌온 질긴 뿌리 어쩌지 못한다 / 누리에 가득한 꽃내음 어쩌지 못한다 // - 졸시 4월 전문

꽃샘추위라는 말이 있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라는 말인데, 봄이 시작된다는 3월이 지나 4월이 되었는데도 실제로 눈발이 날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처럼 세상일이 언제나 나에게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다. 3월 지나 4월에도 간혹 눈발이 날리듯이 세상을 살다보면 느닷없이 닥치는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은 물론 인생도 멋과 맛이 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코로나19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불안하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할 일을 두려워하고 언제까지나 주눅이 들어 있을 수만은 없다. 봄날에도 눈비가 내리지만 끝내 계절이 바뀌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처럼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질병도 물러날 것이고 정말 따뜻한 봄날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