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전 400년 전국시대 초기. 이 무렵은 지방의 대부들이 왕보다 세력이 강할 때이다. 진(晉)나라의 대부 지선자는 자신의 아들 중에 장남인 지요를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그러자 가신 지과가 아뢰었다.

“지요는 형제 중에서 가장 힘이 세고 활쏘기와 말달리기 등 기예가 뛰어납니다. 그리고 말을 잘하고 성격이 과감한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어질지 못합니다. 만일 자신의 뛰어난 것으로 사람을 능멸하고 부족한 것으로 행동한다면 크게 망하고 말 것입니다. 하오니 지요보다는 서자인 지소가 더 낫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선자는 이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요에게 물려주었다. 그러자 가신 지과는 종친을 떠나 성을 보씨로 바꾸어 숨어 살았다.

지요가 진(晉)나라의 정치를 맡게 되자 대부들이 모두 무서워 떨었다. 지요는 갈수록 포악해졌고 대부들은 하루하루 모욕당하기 일쑤였다. 하루는 지요가 대부 한강자에게 말했다.

“한씨 종친은 땅이 그렇게 넓다고 들었소. 내게 조금만 줄 수 없겠소?”

한강자는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요의 군사들이 두려워 1만 가구의 땅을 바쳤다. 그러자 지요는 그 기세를 몰아 이번에는 대부 위환자에게 땅을 요구했다. 위환자 역시 거절하지 못하고 순순히 땅을 바쳤다. 이어 지요는 대부 조양자에게 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조양자는 지요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지요가 군사를 몰아 조양자를 공격했다. 그 무렵 조양자는 진(晉)나라에서 가장 어진 대부였고 백성들의 신망이 아주 높았다. 지요의 공격에 백성들이 나서서 대항하였다. 이에 지요가 크게 분노하여 한씨와 위씨에게 군사를 요청하여 연합하여 공격하고자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양자가 몰래 한씨와 위씨에게 사람을 보내 역공격을 제안하였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고 했습니다. 지금 지요가 우리 조씨를 공격하지만 만일 우리 조씨가 망한다면 다음은 한씨와 위씨가 망할 것이오. 그러니 우리가 연합하여 지요를 처치합시다.”

이에 한씨와 위씨가 크게 동감하고 세 집안이 합의하여 지요를 공격하기로 했다. 다음날 밤에 조양자의 군사들이 기습적으로 지요의 진영을 공격했다. 이와 동시에 지요에게 합류하기로 한 한씨와 위씨의 군사들이 양쪽에서 지요를 공격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지요의 군사들은 죽거나 달아났다. 지요 역시 끝가지 저항했으나 생포되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세 집안은 이어 혹시라도 후세에 지요 같은 이가 나타날까 두려워 지씨 집안의 남자라면 갓난아이까지 모조리 멸족시켰다.

대부 지선자가 앞날에 대한 생각 없이 포악한 자식을 후계자로 삼는 바람에 결국 지씨 일족은 멸하고 말았다. 지씨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는 성을 바꾼 보과뿐이었다. 이는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있는 이야기이다.

아랑지구(餓狼之口)란 굶주린 이리의 아가리라는 뜻이다. 탐욕스럽고 잔인한 자는 아무리 선하고 도덕적인 척 하더라도 결국은 자신의 배를 잔뜩 불리기 마련이다. 4월 보궐선거에 이리들이 다시 나타났다. 정신 똑바로 차려서 투표할 때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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