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민주주의 체제에서 다양한 집단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다 보면 대부분 정책이나 예산 편성은 점증적인 결정의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점증적인 결정은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저항을 줄여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합리적 결정은 종종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와서 저항과 반발을 가져오게 된다.

부동산값 폭등에 LH 직원의 신도시 투기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찬물을 끼얹고, 2021년 개별 공시지가가 발표되면서 부동산 문제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있다. 공동주택의 공시지가가 상승하면서 세금이 증가할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공동주택의 가격이 급상승했으니 공시가격도 높아지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 증가 폭이 서울지역은 평균 19.8% 이른다. 필자가 사는 지방의 아파트도 10% 이상 올랐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와 여당은 공동주택의 가격이 상승해도 작년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에 대한 재산세율을 한시적으로 경감하기로 한 조치를 근거로 들며 "전체 주택의 90% 이상의 재산세 부담이 줄어든다"고 한다.

공시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은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올해와 같이 공시가격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은 법적 합리성은 가질 수 있지만, 정치적 합리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공시가격이 상승했지만, 오히려 조세 부담이 줄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조삼모사일 뿐이고, 국민들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분만큼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부동산 갑부는 조세 부담을 세입자에 전가하면 되지만 집 하나가 재산에 전부인 사람에게는 집값이 오르는 것은 오히려 삶에 부담이 된다.

진보주의적 시각의 정치는 많이 가진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서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재분배 정책을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의 부동산 정책과 같이 정부 실패를 세금으로 전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에는 조세저항을 가져오게 된다.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종합부동산세나 공시지가제도와 같은 재분배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을 추진하는 세력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조세저항은 정부에 대한 신뢰와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조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박정희 정권, 부동산 중과세를 도입한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조세제도가 사회정의와 이론적으로 올바르고 합리적인 결정이지만 정부와 정권에 대한 신뢰의 부족으로 강한 조세저항을 가져왔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정책, 나누어주는 복지정책, 포퓰리즘적 공짜정책에 의한 정부실패를 부동산에 대한 중과세와 정부 채무로 충당하고자 하는 조세정책은 명분론으로 옳을지는 몰라도 사회 구성원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시기에 합법성을 명분으로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정책은 잠시 늦추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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