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멈추시오! 차라리 제 아비를 살려주고 저를 죽이시오!”

김개동의 아들 재호였다. 재호는 농민군들 틈에 숨어 지켜보고 있다 아비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연단을 향해 뛰쳐나왔다. 하지만 재호는 연단에 닿기도 전에 사방에서 달려든 농민군들의 몰매에 쓰러졌다. 아버지를 살리려고 뛰어들었던 아들 김재호도 농민군들에게 얻어맞아 살아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농민군들의 몽둥이질이 난무했다.

“그 아들은 살려주시오!”

그때 백발의 상노인이 다급하게 농민군들을 만류했다.

“노인장은 무슨 연유로 김개동의 아들을 두둔하는 것이오?”

“나는 김개동과 같은 마을에 사는 노갑수라는 늙은이요. 비록 아비는 이제껏 저지른 패악이 강물을 이뤄 열 번 죽어 마땅하나 그 아들은 다르오! 아비는 고을민들을 탐학했지만 그 아들은 아비 몰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수없이 도와왔소이다. 그로 인해 목숨을 보존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는 한두 사람이 아니오. 그러니 그를 살려주어 집안 명맥이라도 잇게 해주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노갑수라는 상노인이 눈물로 농민군들을 설득했다. 농민군들이 노인의 말을 듣고 김재호를 살려주었다. 그러나 김개동은 많은 농민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을 당했다. 김개동의 목이 눈앞에서 날아가는 것을 본 조 부사의 얼굴이 납빛으로 변했다.

“조 부사 놈도 모가지를 따버리시오!”

“지금 당장 모가지를 쳐 황천길 가는 개동이 동무나 시키시오!”

피를 본 농민군들이 흥분해서 들고 일어섰다.

“조 부사도 상여에 오르시오!”

우장규 농민대장이 조관재 부사에게 명했다. 

“못 탄다!”

조 부사가 상여에 타기를 거부했다. 기는 꺾였지만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조 부사의 태도에 농민들이 더욱 분노했다. 사방에서 농민군들이 던진 돌이 날아와 조 부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얼굴에서 흐르는 피가 갓끈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고을민들에게 더 망신을 당하고 타겠소?”

우 대장의 말에 조 부사가 마지못해 상여에 올랐다.

“부사님 행차시다!”

요령잡이가 소리쳤다.

농민군들과 성안 사람들이 해괴한 부사의 행렬을 보려고 모두들 도회장으로 몰려들었다. 발인제가 시작되었다. 초군과 사노군 수십 명이 나와 상여 위의 조 부사에게 마지막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일일이 잔을 들어 갸자에 앉아있는 조 부사의 발 아래 부었다. 조 부사를 완전히 망자 취급하는 것이었다. 조 부사의 얼굴이 무참해졌다.

“이젠 죽었으니 그 좋아하던 술맛도 못 보는구먼!”

“물욕이 많더니 자식 욕심도 엄청나구만.”

“그러게. 저어기 상여 앞에 꿇어 엎드린 자식이 몇 명이여?”

발인제를 구경하는 사람들마다 비아냥거렸다. 수십 명의 아들들이 한 명씩 나와 잔을 올리느라 발인제는 지루하게 이어졌다.

드디어 발인제가 끝나고 요령잡이가 조 부사의 행차를 알렸다. 하늘을 찌를 듯 ‘쭈욱’ 뻗은 대나무에 걸린 다홍색 명정이 바람에 휘날리며 행렬의 앞장을 섰다. ‘청풍부사 조관재’라고 쓰여진 명정의 흰 글씨가 펄럭일 때마다 햇빛에 반짝거렸다. 그 뒤로 조 부사가 탄 상여가 농민군들에 의해 운구되었다. 상여를 멘 초군들은 굴건에 행전을 차고 요령잡이의 선창에 따라 후렴을 붙이며 상두가를 불렀다. 상여 뒤로는 조 부사의 평생 치적이 적힌 오색만장과 농민군 행렬이 줄줄이 이어졌다. 상여가 도회장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불타 무너져버린 금남루 앞을 지나 성안길인 동문대로로 나섰다. 상두가를 부르는 요령잡이 목소리는 날아갈 듯 흥겨웠고, 뒤따르는 농민군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소리 높여 헛 곡소리를 냈다. 상여를 따라 행렬하는 사람들이 끝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환곡을 탕감하라!”

“고을민을 탐학한 자들을 치죄하라!”

“조 부사는 고을민에게 사죄하라!”

농민군들이 상여를 뒤따르며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외쳤다.

상여가 읍성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도회장 한가운데에 다다르자 상여를 메고 있던 초군들이 갑자기 어깨에 걸고 있던 끈을 풀고 상여를 높이 들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상여가 바짝 부서지며 타고 있던 조 부사가 땅바닥으로 떨어져 뒹굴었다. 농민군들이 조부사에게 달려들어 갓을 벗기고 상투를 잡아당겼다. 어떤 이는 침을 뱉고 발길질을 해댔다. 어떤 이는 흙을 뿌리고 손찌검을 하며 악의에 찬 욕설을 퍼부었다. 조 부사의 행색은 사람들에 의해 당겨지고 찢겨져 꼴이 말이 아니었다. 청풍부사 조관재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다. 저리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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