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 문화 산책] 사라져가는 활터 풍속, 편사
[활쏘기 문화 산책] 사라져가는 활터 풍속, 편사
  • 충청매일
  • 승인 2021.03.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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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볼셰비키가 주도한 혁명이 성공하고 짜르가 총살당하며 왕정체제가 무너지자 궁정음악단은 큰 위기에 휩싸입니다. 공산주의 이론에 의하면 자본주의 예술은 귀족에 붙어사는 기생충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처형당하거나 시베리아 유배 같은 처벌이 기다리리라 생각하고 혁명 정부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들 앞에 혁명의 지도자 레닌이 나타납니다.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한 그들 앞에서 입을 엽니다.

“여러분은 러시아의 아름답고 위대한 예술을 지키는 분들입니다. 지금까지는 짜르 하나만을 위해 연주해왔지만, 앞으로는 인민을 위하여 여러분의 예술을 마음껏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 대한 예우와 지위는 앞으로도 지금과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혁명 정부는 러시아의 훌륭한 음악이 영원히 간직되기를 바랍니다.”

이로써 러시아 음악은 유럽 음악의 특별한 위상을 차지합니다. 유럽이 자본주의화로 예술도 상업화를 겪는 데 반해, 러시아의 음악은 그 순수성을 지키며 소련 해체 때까지 독특한 모습을 유지하며 세계 음악을 선도합니다.

한 나라나 겨레의 예술 중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것은 우두머리인 왕 주변의 예술입니다. 어찌 보면 사치스러움이 역겨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예술 면에서는 그 이상의 수준이 나올 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왕왕 공산주의화 과정에서 그런 예술들이 다른 이유로 평가 절하되어 파괴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국의 홍위병 운동 때 파괴당한 전통 문화를 보면 정말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활터에서 생활하다 보면 반드시 이런 혼란을 한 번씩 겪습니다. ‘활이 스포츠인데,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1960년대까지 서울의 활터에서는 소리 기생이 상주하여 활을 쏠 때마다 장구 치며 획창을 했습니다. 이런 것은 전국에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활을 배운 신사들이 구사들의 이런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운동하는데 왜 장구 치며 노느냐는 것이죠. 일제강점기 때 일본 지주들이 한 말과 똑같습니다. 그때 논에서 일은 안 하고 북 치며 소리를 메기는 농사꾼이 있는 걸 보고, 노래 할 시간이면 모라도 하나 더 심으라고 해서 결국 해방 직전에는 민요도 부르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수백 년을 내려오던 획창이 1970년대 들어 서울의 활터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활터를 사격장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단을 따려고 혈안이고, 5단이 되면 명궁이 되어 활터를 호령합니다. 과녁 맞히는 기술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양산되어, 결국 그들의 눈으로 활터를 보면, 사격술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최근 들어 활터에는 적중 여부를 좀 더 정확히 가리기 위해 마이크를 달고 불이 번쩍이도록 장비를 설치합니다. 더 나아가 활쏘기 시작을 알리는 종까지 치며 활터를 사격장으로 바꾸어 갑니다. 심지어 어느 활터에서는 과녁에 붙은 번호 따라서 “1사로, 2사로”라고 하여 사격장 용어를 그대로 쓰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이 바로 활터 음악이고 편사입니다. 천 년 전통문화의 단절과 멸종이 활터에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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