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군 여러분! 우리 고을의 수령이신 조관재 청풍부사를 도회장에 직접 모셨으니 여러분들께서는 직접 부사께 진언을 올리시오!”

우장규 농민군 대장이 조관재 부사에게 예우를 갖췄다.

“저런 자에게 무슨 진언이요!”

“당신 같은 자를 어찌 고을의 수령이라 할 수 있소?”

“원께서는 어찌하여 고을민들에게 한 약조를 헌짚신처럼 버렸소이까?”

“당신은 수령으로서 진정 고을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알고는 있소?”

“당신처럼 원 노릇을 하면 지게 작대기를 앉혀놔도 하겠소이다!”

연단 아래 운집해 있던 농민군들이 조관재 부사를 향해 질타를 해도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어젯밤 금남루 문루 위에서 농민군들에게 약속을 하던 당당함과 체통은 하루 사이에 온데간데없었다. 농민군들은 조 부사를 향해 이제껏 당한 수탈을 따지고 관아 수취제도의 폐단을 일일이 열거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밤이 깊어져도 농민군들은 부사를 관아로 들여보내지 않고 그의 악행을 따졌다. 결국 조 부사는 장마당에서 농민군들의 성토를 들으며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 없었다. 조 부사가 저지른 패악이 워낙 많았으므로, 날이 새도록 성토를 해도 농민들 원성은 그칠 줄 몰랐다. 날이 밝아오자 농민군들은 더욱 조 부사를 몰아세웠다.

“당장 그 자리에서 완문을 쓰시오!”

“부사는 잘못을 시인하고 완문을 써라!”

농민군들이 약속했던 완문을 쓰라며 조 부사를 더욱 압박했다. 그 상황에서도 조 부사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김개동을 제물로 삼았다.

“난 모르는 일이다. 내가 이곳 수령으로 내려온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는 데 뭘 알겠소? 관아의 모든 일은 아전들이 보는 것이오. 나는 그저 수결만 할 뿐이오!”

조 부사는 모든 책임을 아전들에게 떠넘기며 지난 밤 농민군들에게 약속했던 완문을 써주지 않았다. 조 부사는 김개동에게 모든 일을 전가하며 벌을 주라고 항변했다. 성질 급한 농민군들은 ‘차라리 저 놈얼 때려죽여 불구덩이로 던져 버리자’고 고함을 질렀다. 예전 같으면 얼굴도 들지 못하고 벌벌 떨던 농민들이 이제는 부사 코앞에서 삿대질은 여사였고 말끝마다 ‘놈 자’도 거리낌 없이 붙였다.

아침부터 도회장 마당에서는 농민군들에 의해 꽃상여가 꾸며지고 있었다. 상여 천장에는 앙장이 쳐지고, 망자가 누울 장강 위에는 갸자를 얹고 사방으로는 청실홍실로 짠 화려한 유소와 종이로 만든 색색의 꽃 장식을 달았다. 상여는 망자의 것이 아니라 산자를 태울 것이었다. 상여가 완성되자 초군들이 상여를 메고 도회장을 돌며 헛상여를 놀았다. 요령잡이는 구성지게 상두가를 부르고 농민군들은 그 뒤를 따르며 헛울음으로 곡을 했다. 헛상여놀이가 끝나자 초군들이 메고 있던 상여를 연단 앞에 내려 놓았다.

“형방을 태우거라!”

우장규 농민대장의 지시에 따라 요령잡이가 명령하자 기다리고 있던 농민군들이 연단 위에 묶여있던 형방 김개동에게로 다가갔다. 김개동이 상여를 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묶여져 있는 몸으로 어쩔 수 없었다. 농민군들에 의해 김개동이가 상여 위에 올려졌다. 초군들이 상여를 메고 도회장을 한 바퀴 돌고난 다음 다시 연단 앞으로 돌아왔다. 농민군들이 김개동을 상여에서 끌어내렸다. 그 옆에는 이창순 좌군장이 장도를 빼어 들고 서 있었다. 김개동이가 그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대가리가 되지 못해 남의 수족이 되었으면 주인을 위해 수족노릇을 잘하는 것이 아랫사람 도리이거늘 어찌 주인을 바르게 모시지 못하고 오히려 앞장서 고을민들을 탐학하였는가?”

우장규 농민대장이 김개동을 질타했다.

“나 역시 한낱 아전에 불가한데 어찌 부사의 재가도 없이 독단으로 관아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난 부사의 지시에 따른 죄밖에 없소이다!” 

조 부사가 그랬던 것처럼 형방 김개동이도 모든 잘못을 조 부사에게로 돌렸다.

“주인 잘못 만난 것도 네 복이다! 너는 잘못이 없다하나 너 역시 고을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니 죄가 없다하지는 못할 것이다! 좌군장! 모든 농민군의 뜻으로 형방 김개동을 처단하시오!”

“네놈의 탐학으로 죽어간 고을민들도 이루 헤아릴 수 없으니 죽어도 억울하지는 않겠지. 이제 가거든 굶어죽은 원혼들에게 사죄를 하거라!”

김개동이가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며 목숨만 살려 달라고 구걸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창순이 시퍼렇게 날선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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