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여기 병방 오학노가 있다!”

관속들 틈에서 오학노를 발견한 같은 마을사람들이 그를 고발했다.

“어디?”

“여기 꿩새끼 마냥 대가리를 처박고 있잖여!”

“다 썩은 귀신한테도 세금을 매긴 저승사자도 겁나는 게 있는가벼!”

“저 새끼도 잡아 내!”

오학노가 관속들 틈에서 같은 마을의 농민군들에 의해 개 끌리듯 끌려나왔다. 오학노 또한 형방 김개동 못지않게 패악을 저질렀다. 오학노가 고을민들에게 행한 패악 역시 눈 뜨고는 못 볼 목불인견이었다. 이미 여러 번 도회에서도 고을민들의 성토가 있었지만 죽은 아버지한테도 군포를 부과했던 장본인이 병방 오학노였다. 고을민들은 오학노의 착취를 다른 환곡 못지않게 무서워 했다. 그는 군졸들의 군량을 충당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명목을 붙여 고을민들의 고혈을 짜냈다. 그리고 거둬들인 군량을 장리로 고을민들에게 빌려주었다. 그는 봄에 쌀을 빌려줄 때 이미 가을에 오른 금으로 이자를 떼고 나머지 쌀을 빌려주었다. 배를 곯다 죽어가는 같은 고을민들을 착취하는 기괴한 방법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다 빌려간 군량을 갚지 못하면 병영으로 끌고 가 초주검을 만들었다.

“저 놈은 죽어도 피 한방울도 나오지 않을 것이오!”

“저 놈 때문에 작년 겨울 우리 마을에서 죽어나간 사람이 열도 넘을 것이오. 저 놈은 사람이 아니라 인두겁을 쓴 사람 백정이오!”

후촌에서 온 농민군들이 하나같이 오학노를 성토했다.

그 사람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작년 가을걷이가 시작되자마자 오학노는 관아의 군졸들을 데리고 마을 농민들 대신 추수를 했다. 농민들의 일손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농민들에게 빌려주었던 군량을 다른 곳에서 채가기 전에 먼저 받으려는 속셈이었다. 그것까지도 농민들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병방 오학노는 악독했다. 오학노가 빌려준 군량미는 다른 환곡에 비해 워낙 고리여서 그것을 갚고 나면 당장 식구들 먹을 양식이 없었다. 아무리 지독한 관속이나 양반지주들도 소작인들이 당장 먹을 양식은 남겨두고 소작료나 환곡을 걷어갔다. 그런데 오학노는 군졸들을 동원해 군량을 빌려먹은 농민의 논에 들어가 직접 추수를 했고 낟알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거둬갔다. 봄철이라면 나물이라도 뜯어다 목숨만은 부지했겠지만 이제 곧 닥쳐올 겨울에 양식이 떨어지면 곧 죽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죽이라도 끓여먹을 수 있도록 반만 갚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지만 오학노는 인정사정 없었다.

“겨울 날 일이 하도 아득해서 빈 논바닥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고 말았소. 결국 지난겨울 두 아들 녀석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부황이 들어 죽었소. 저 놈 오학노가 죽인 거요!”

하소연을 하던 농민군이 자신에게 하는 이놈저 놈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지 오학노가 칼눈을 하며 째려보았다.

“뭘 잘한 게 있다고 쳐다봐! 눈깔을 빼다 개눈에 박아도 시원찮을 놈!”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양태술이 오학노의 등을 향해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다.

“저 놈은 인간이 아니오! 인간탈을 쓴 저승사자요.”

“우리 농민군들의 손으로 직접 처단합시다!”

후촌리에서 온 같은 마을의 농민군들이 먼저 일어나 병방 오학노를 쳐 죽이자며 들고 일어섰다. 오학노를 둘러싸고 있던 농민군들이 순식간에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성난 농민군들에게 짓밟힌 오학노가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오학노가 사지를 심하게 떨며 땅바닥이 흥건하도록 오줌을 쌌다. 농민군들 중 한 사람이 몽둥이를 높이 쳐들었다. 일순 사방이 조용해졌다. 다시 한번 퍽하고 박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성 안 여기저기서 분노한 농민들이 지른 불길이 솟아올랐다. 내성 안은 농민군들의 함성과 쫓기는 자들의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농민군들은 관아를 이 잡듯 뒤지며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숨어있던 관속들과 군졸들을 하나씩하나씩 잡아냈다. 잡혀 나온 관속들은 사방에 죽어 널려있는 시신들을 보며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미 내성 안은 농민군들에게 점령당해 농민군들의 세상이 되었다. 청풍부사가 집무를 보던 금병헌은 별동군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어 화마는 면했지만 관아의 부속건물들은 이미 여러 채가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거칠 것이 없어진 농민군들은 관아가 있는 내성 안팎을 거침없이 휘돌아치며 평생 처음으로 해방감을 맛보았다. 하루 종일 청풍읍성은 사방에서 타오르는 불길과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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