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공방 민치상이가 놀라 객사인 응청각 계단을 타고 황급하게 이층 누마루로 올라갔다. 농민군들도 그의 뒤를 쫓아 응청각 이층 누마루로 올라갔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궁지에 몰린 민치상이가 누마루 난간에 버티고 서서 앙살을 부렸다. 농민군들이 점점 다가서자 까치발을 딛고 난간에 힘을 주었다. 그 바람에 난간이 ‘우지끈’ 부서지며 민치상이가 두루마기에 싸여 허연 보따리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민치상이가 아래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농민군들이 우르르 몰려가 그를 둘러쌌다. 그들 중 한 명이 땅에 떨어져 흙뭉텅이가 된 민치상을 발로 툭툭 찼다.

“네 이놈들! 나라에는 추상같은 법이 있거늘 네놈들이 나를 이리 능멸하고도 목숨을 부지할 성 싶더냐!”

민치상이가 악을 썼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네놈이 아직도 세상 달라진 것을 모른단 말이냐? 정녕 불구덩이에 던져져야만 제 정신을 차릴테냐?”

민치상이를 쫓던 초군의 천만이가 이층 누마루에서 한걸음 뛰어내리며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민치상을 향해 호령을 하는 천만이는 양반들 기침소리에도 놀라 설설 기던 예전의 사노가 아니었다. 천만이의 기세는 마치 갈기를 세운 사자와 같았다. 천만이가 민치상의 가슴팍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민치상이가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민치상이가 겁에 질려 땅바닥을 얼금엉금 기며 사람들 눈치를 살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농민군들이 야유를 해댔다.

향청에서 부사와 아전들의 주구노릇을 하던 북하리 김 참봉도 농민군들에게 붙들려 나왔다. 김 참봉 역시 도망을 치다 농민군들에게 봉변을 당해 온 몸에 흙 묻은 짚신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놈은 내게 맡기시오!”

목소리를 높이며 앞으로 나선 이는 우군의 사노군장 양태술이었다.

“너는 태술이 아니냐!”

김 참봉이 농민군들 사이에서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반색을 했다.

“저승갈 길에서 만나니 종놈도 반갑더냐?”

양태술이 손에 쥔 홍두깨에 힘을 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감히 머슴놈이 어디에다 대고 하대를…….”

김 참봉은 자기가 할 말을 미처 끝내지도 못했다. 양태술의 홍두깨가 김 참봉의 정수리를 정통으로 내려쳤기 때문이었다. 머리에서 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김 참봉은 찍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 김 참봉의 머리가 ‘쩌억’ 갈라지며 피가 튀고 허연 골이 빠져 나왔다. 그래도 양태술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제껏 김 씨 집성촌에서 받은 천대와 멸시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마누라 고쟁이를 빼앗기고도 소작을 잃을까 겁이나 항변 한 마디 못한 생각을 하면 눈에서 불똥이 철철 흘렀다. 개가죽처럼 널브러진 김 참봉의 온몸에 난장 치듯 양태술의 홍두깨질이 쏟아졌다. 김 참봉의 몸에서 뼈가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두둑두둑 들렸다.

“그만 하시오! 망자에게도 지킬 예가 있소!”

우군장 하익수가 양태술을 말렸다.

“우리 같은 상놈은 살아서도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데, 양반은 뒈져서도 대우를 받는단 말이오니까!”

양태술이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우군장 하익수에게 대들었다.

“그려! 양반들은 우리한테 온갖 패악질을 다하면서 상놈은 왜 평생 양반들을 떠받치며 살아야 한단 말이오?”

“저 놈들은 우리를 개돼지처럼 다루면서 짐승만도 못한 짓거리를 한 놈들이오! 그런 놈들을 왜 공경해야 한단 말이오?”

“모조리 쳐 죽여 씨를 말립시다!”

농민군들이 흥분해서 양반들을 모두 죽이자며 다른 농민군들을 선동했다.

“제발 살려주시오! 제발 살려주시오!”

공방 민치상이가 하익수 우군장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며 읍소했다.

김 참봉이 홍두깨에 맞아 그 자리에서 맞아죽는 것을 본 공방 민치상이가 허옇게 질려 공포에 떨었다. 거기에다 흥분한 농민들이 양반들을 모두 죽이자며 들고 일어서자 민치상이는 체면이고 뭐고 죽자 사자 하익수 우 군장에게 매달렸다.

“우리는 폭도가 아니오! 우리가 저들과 똑같이 행동한다면 봉기한 명분이 사라지는 것이오. 지금부터 잡은 모든 관속들은 동헌의 지도부로 끌고 오시오!”

우 군장 하익수가 사노군장 양태술과 농민군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그러나 봇물 터지듯 터지기 시작한 농민군들의 분노를 군령으로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지금껏 고을민들에게 패악을 저지르며 원성을 샀던 관속과 양반지주들은 농민군들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을 찾기에 급급했다. 농민군들이 이들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며 몰려다녔다. 읍성 곳곳에서 붙잡힌 관속들과 양반지주들을 향해 그동안 참고 참아왔던 농민군들의 분노가 장맛물 쏟아져 내리듯 터졌다. 그 속에는 관아에서 병방을 맡고 있는 후촌리 향리 오학노도 있었다. 오학노는 대물림으로 청풍관아 병방을 해먹고 있었다. 그는 농민군들 중에서 혹시 자기를 알아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매 만난 꿩 마냥 고개를 관속들 틈에 틀어박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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