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시민들의 산책 공간, 고양의 서오릉
[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시민들의 산책 공간, 고양의 서오릉
  • 충청매일
  • 승인 2021.03.1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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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대 경영학과

[충청매일] 서오릉은 서울과 고양의 경계 부분에 있는 조선왕릉이다. 한양의 서쪽에 왕릉이 5개나 있어 서오릉이라 하였다. 이곳에 처음 왕족의 무덤이 들어선 것은 세조(1417∼1468) 때이다.

세조는 그의 왕위를 이을 의경세자(1438∼1457)가 갑자기 죽자 아들을 위해 22명의 대신과 9명의 상지관을 19곳의 장지 후보지에 투입하여 그 중 6곳을 선정하고 직접 답사에 나섰다. 그리고 명당으로 선정한 곳이 현재의 서오릉 터이다. 앞산에 올라가 무덤의 후보지를 바라보고 천하의 명당이라고 감탄하였다. 그런데 세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둘째 아들 예종(1450∼1469)이 1년도 안 되어 죽자 예종도 형 의경세자가 잠들어 있는 이곳에 모셔졌다. 그런데 이곳을 다시 주목한 자는 200여 년이 훨씬 넘어 숙종(1661∼1720)과 영조(1694∼1776)였다. 숙종과 영조는 전쟁이 없던 시기라 숙종은 46년간 재위하였고 영조는 52년간 재위하였다.

풍수에 능한 세조가 의경세자 자리를 이곳에 잡고 그다음을 이은 예종이 일찍 갔지만, 의경세자가 명당에 들어 왕권은 다시 의경세자 아들 성종에게로 넘어갔고 의경세자는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이를 주목한 숙종은 그의 왕비 인경왕후(1661∼1680)가 먼저 죽자 이곳에 왕비의 능을 마련하고, 그 후 그곳 동쪽 넘어 언덕에 동원이강릉으로 두 왕비와 숙종 자신의 능을 이곳에 잡았다.

이곳을 다시 주목한 자는 숙종의 아들로 21대 왕위에 오른 영조였다. 왕비 정성왕후(1692∼1757)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장사 지내고 영조 본인의 자리까지 바로 옆에 쌍릉 터로 비워 두었다. 그러나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손자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할아버지를 그의 왕비 장성왕후(33년간 재임) 옆에 장사 지내지 않고 동구릉의 17대 왕 효종이 버리고 간 구광터에 장사 지냈다.

서오릉은 세조가 의경세자를 위해 자리 잡았지만,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고 예종, 숙종, 숙종 원비, 영조 원비 등 5 왕릉이 들어서 서오릉이 되었다. 1969년에는 경기도 광주에 있던 숙종의 폐비 장희빈 묘까지 이곳에 옮겨와 숙종은 죽어서도 4명의 왕비를 거느리는 왕릉이 되었다. 그 후 조선 시대 왕가의 권력 암투, 왕비와 후궁들의 시샘과 질투 등 역사 드라마의 주 무대가 되자 많은 사람에게 서오릉이 알려졌다.

40여 년 전에는 왕릉 출입이 자유로웠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친족들의 친목 문중 모임이 집에서 모이는 것은 한계가 있자, 모임 장소를 왕릉으로 잡았다. 왕릉은 다음 세대들에게 역사도 일깨워 주며, 하루종일 뛰어놀며 친목을 다지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또한 왕족의 후손으로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자부심도 키워주었다고 한다.

이제 조선왕릉 42기는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문화해설사가 배치되었고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왕릉을 방문하면 왕에 대한 업적을 살펴 볼 수 있고 역사의 흐름을 재조명할 수 있다. 왕릉에는 숲이 울창하고 역사가 베어 있어 많은 사람이 역사를 짚어 보고 산책하며 즐겨 찾는 인기 명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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