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렇다면 왜 농민군들 몰래 떠나려 한 것이오니까?”

운집한 농민군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미리 여러분들에게 알렸다면 나를 가도록 내버려두었겠소이까?”

“그 말도 맞기는 하네 그려.”

농민군들도 애매해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장, 수상한 자를 잡았소이다!”

유겸호의 처결을 내리지 못해 설왕설래하던 차에 천만이가 초군들과 함께 달려왔다.

“초군장, 무슨 일이오?”

“경심령을 지키고 있던 초군이 잡았는 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요.”

경심령은 청풍 연론에서 서창 사이에 있는 고개로, 이곳을 넘으면 한수와 신당을 거쳐 곧바로 충주목으로 직통하는 고개였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이냐?”

좌군장 이창순이가 같은 군장임에도 나무꾼 출신인 천만이에게 하대를 했다.

“경심령은 고개가 험하고 깊어 한낮에도 떼를 지어 넘어 다니는 데 저 자는 혼자서 그것도 한밤중에 넘다가 우리 초군에게 잡혔습니다요.”

천만이가 수상하다며 잡아온 사람은 보부상 행색을 하고 있었다.

“너는 어디 사는 누구냐?”

이창순이 물었다.

“나는 서창 덕곡에 사는 장사꾼, 충길이라 하외다.”

“그런데 어째서 그 험한 고개를 한밤중에 넘었단 말이냐?”

“집에 늙으신 노모님이 홀로 계신 터라 걱정이 되어…….”

충길이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목소리까지 떨었다.

“덕곡에 보부상이라면 서창 황칠규를 아시는가?”

중군장 차대규가 물었다. 차대규는 평생을 북진여각의 최풍원 밑에서 장사를 해온 터라 청풍 인근의 장사꾼은 뜨내기라 해도 웬만하면 낯이 익었다. 그런데 이 자는 아주 생소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서창 인근 장사꾼들이라면 모를 리 없는 황칠규 객주를 물어본 것이었다.

“알기는 아오만…….”

차대규의 물음에 충길이가 대답은 했지만 적이 당황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다.

“저 자의 봇짐을 풀러 보거라!”

차대규가 곁에 있던 수하들에게 지시했다. 수하들이 충길이의 봇짐을 풀어 헤치고 궤를 열자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 수상한 자로구나. 네가 누군지 당장 실토를 하거라!”

이창순이 겁박을 했다.

“호패를 보이거라!”

하익수도 다그쳤다.

“호패는 장삿길에 잃어버렸소이다. 난 덕곡 사는 충길이가 분명하오!”

충길이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저 자가 멨던 멜빵과 궤를 묶었던 줄을 가져 오거라!”

차대규의 눈에 좀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충길이의 봇짐에서 풀어놓은 줄이 색달랐다. 보부상들은 무거운 등짐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으므로 거개가 질긴 삼줄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충길이란 자는 종이로 꼬아 만든 지끈이 대부분이었다. 종이끈은 주로 관아같은 곳에서 문서를 철하거나 가벼운 물건들을 묶어 보관할 때 쓰는 줄이었다. 차대규가 풀어놓은 끈들을 살펴보았지만 삼줄이 아니라 지끈이라는 것 외에는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충길이는 수상한 점이 많았다. 분명 장사꾼은 아님이 분명한데 그 증좌를 찾을 수 없었다. 차대규가 충길이의 온 몸을 아래위로 훑으며 찬찬히 살폈다. 그러다 충길이의 무릎 아래 묶은 행전 끈이 이상했다. 보통 행전 끈은 옷소매의 아가리처럼 만들고 그 위쪽을 갈라 묶을 수 있도록 양쪽에 두 개의 끈을 달아 돌려서 매게 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 끈은 헝겊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충길이의 정강이를 묶은 행전 끈은 종이로 새끼를 꼬아 만든 끈이었다.

“저 자의 행전을 풀거라!”

차대규가 행전 끈을 풀도록 명령하자 충길이가 거세게 반항했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 여럿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차대규가 종이 새끼를 세밀하게 살폈다. 그리고는 꼬여있던 새끼를 풀었다. 새끼는 여러 개의 심지로 꼬여 있었다. 다시 심지를 펼치자 놀랍게도 그 속에는 서찰이 들어있었다. 행전을 묶었던 서찰은 창칼로 잘게 썬 다음 순서에 맞춰 순서대로 심지를 꼬아 행장 끈으로 위장을 한 것이었다. 서찰은 청풍부사 조관재가 충주목사에 보내는 것으로, 그 안에는 농민군 지도부와 동원된 고을민들의 숫자 등이 마을별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또 일부 농민들의 패악으로 많은 선량한 고을민들이 당한 재산피해가 막대하게 불어나고 있으니 충주병영의 군사들을 급히 파송해 달라는 서찰이었다. 행장 끈 속에는 또 한 장의 서찰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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