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졸필(拙筆)]봄(春)은 왔건만,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김동진의 졸필(拙筆)]봄(春)은 왔건만,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 충청매일
  • 승인 2021.03.0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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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충청매일]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중략)’

이해인 수녀의 ‘봄 일기’라는 시(詩)다.

누군가에게 봄처럼 새 희망과 기운이 되려면, 그 사람이 바로 희망이요 기운이어야 한다.

희망을 줄 수 없고, 기운을 전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사람들에게 봄이 되겠다고 한 들 믿음을 얻을 수 없다.

계절상 봄이 왔다. 그동안 움츠렸던, 잠들었던 생명들이 다시 깨어나 용솟음치는 계절이다.

하지만, 우리는 봄을 체감하지 못한다.

지난 겨울, 혹독하게도 추웠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아서일까. 아님 봄이 지닌 희망과 기운을 상실해서일까.

서민 경제는 여전히 암울하다. 뚜렷하게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빈부(貧富)의 차이는 더욱 극명해져 간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 속, 벌기는커녕 쓸 돈조차 없는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있어도 불어나는 ‘부(富)의 기적’을 부러움으로 절망한다.

사회는 더욱 치열하게 부딪히고 갈라선다. 빈부, 노사, 이념과 진영으로.

화합하고 어우러져 난국(難局)을 헤쳐 나가도 힘이 부칠 지경인데도, 사람들은 제 갈 길만 재촉하고 고집하며 도무지 함께 하질 못한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이끌어가야 할 정치는 더욱 가관이다.

되레 내 편, 네 편 가르기를 부추긴다. 내 편을 비판하면 용서 못할 적(敵)으로 만든다. 내 편의 잘못은 작은 실수요, 네 편의 작은 실수는 용납 못할 적폐다.

예의도, 관용도, 배려도, 염치도, 양심조차도 없는 집단이다.

그러면서도 국민을 위해, 국민의 평안을 위해 서로 희망이 되겠다고 나선다. 스스로 희망이지도, 새 기운이지도 못한 사람들이 말이다. 국민들이 가장 못믿을 집단이라고 하는데도 믿으라 한다.

국민의 희망, 국민의 아픔, 국민의 절규, 국민의 삶 따위는 그들의 권력욕과 진영이기주의에 비하면 돌아볼 가치도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봄을 만들어 가리라. 오지 않은 봄을 찾아 희망과 용기의 봄을 만들어가리라.

헤르만 헤세는 ‘삶을 만드는 기쁨’을 통해 말한다. “저녁이 따스하게 감싸주지 않는, 힘겹고 뜨겁기만 한 낮은 없다. 무자비하고 사납고 소란스러웠던 날도, 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 안아 주리라”고.

딱 우리의 얘기인 듯하다. 지금은 비록 힘겹고 뜨겁기만 한 낮이요, 사납고 소란스러운 날이지만 어머니처럼 감싸 안아줄 희망과 용기와 미래가 올 것이란 믿음을 버리지 못하기에.

그래서 봄이지만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린다. 그래야 살아져가기에.

살기 위해선 저항해야 한다. “자유와 권리는 딱 네가 저항한 만큼만 주어진다”는 체 게바라의 말처럼 국민보다 자신이 속한 진영과 집단을 중시하는 그들의 오만과 착각을 일깨우기 위해.

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고 만들어야 비로소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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