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금남루 아래서 조 부사의 어줍잖은 행태를 구경하던 농민군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조관재 부사는 금남루 문루에 부출이 목을 매달아 법을 어기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농민군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고 겁을 주기 위한 속셈이었다. 그러나 농민들도 수탈의 중심에 어떤 자들이 있는지 환하게 알고 있었다. 오히려 농민군들이 그런 조 부사를 조롱했다.

“어서 농민대장이 보낸 문서나 읽고 그 소감이나 지껄여 보시우!”

금남루 아래서는 농민군들이 계속해서 부사를 비아냥거렸다.

관사노 부출이를 제물로 삼아 처단을 하고 농민군들을 위협하는 동시에 자신도 곤경을 벗어나려 했던 조 부사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차질이 생기자 적잖게 당황했다. 수많은 농민군들이 눈을 반짝이며 문루 위의 조 부사 입만 주시했다.

“이 시간 이후 관내 고을민에게 부과했던 부당한 세금은 모두 탕감하겠소!”

조관재 부사도 어쩔 수 없이 농민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관원들 말은 믿을 수 없소! 그러니 문서를 작성해주시요!”

농민대장 우장규가 조 부사에게 완문을 요구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까지 해 주겠소! 그러니 이젠 모두들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시오!”

“관아에서 고을민들 목을 조르는 수취장부는 어떻게 하겠소이까?”

“그것도 모두 없애 버리겠소!”

“그동안 우리를 탐학한 관리와 양반지주도 치죄를 하시오!”

“그렇게 하겠소!”

“이번 도회에 참여했던 농민지도부와 고을민들에게 차후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해주시오! 그러면 우리도 해산을 하겠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모두들 안심하시오!”

조관재 부사가 농민군들이 요구하는 모든 사안들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와아! 이겼다!”

농민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농민군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동안의 고생이 수포로 끝날까봐, 혹은 잘못되어 해를 입지는 않을까 매일같이 노심초사했던 농민군들도 이제 마음이 놓였다. 이미 가까운 마을에서 온 농민들은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읍성 안은 온통 잔치 분위기로 들떴다. 청풍관아의 일부 군졸들은 농민군들과 어울려 함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집집마다 음식을 내오고 술이 동이 째 농민군들에게 돌려졌다. 읍성 곳곳에서 밤새 잔치가 벌어졌다.

이튿날 새벽녘, 아직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관아 뒤편 소로를 통해 은밀하게 읍리나루터를 향해 내려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승리했다는 기쁨에 도취해 밤새 술판을 벌였던 농민군들은 대부분 곯아 떨어졌고, 군데군데 약간의 농민군들만 스러져가는 모닥불을 벗하며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농민군들은 관아 뒤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짐작도 하지 못했다. 농민군들의 눈을 피해 강가 나루터로 내려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관아에 숨어있던 관속들이 분명했다. 이들은 읍리나루에 매어있던 관선에 올라 닻줄을 풀고 조심스럽게 노를 저었다. 그리고는 뱃머리를 돌려 강 복판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강 양편에 숨어 이들의 동태를 살피던 사람들이 일제히 횃불에 불을 붙이며 함성을 질렀다. 특별군장 이중배가 지휘하던 별동대였다. 어둠에 싸여 캄캄하던 강이 횃불에 반사되며 환하게 살아났다. 강 복판에 다다른 관선이 별동대의 함성에 놀라 갑자기 노질이 빨라지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관선이 빠르게 하류로 내려갔다. 관선이 암초가 많은 사래여울에 이르자 강가에 있던 별동대가 일제히 횃불을 껐다. 강을 밝혀주던 횃불이 갑자기 꺼지자 물길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관선이 암초에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 연달아 들려왔다. 다시 별동대가 횃불에 불을 붙였다. 관선은 어둠 속에서 물길을 잘못 들어 암초지대에 들어가 좌충우돌이었다. 갑판 위에서는 조군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암초를 피하느라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순간 강 가운데 솟은 삼봉 바위 뒤에 뗏목을 숨겨놓고 기다리던 별동대가 떼를 풀어 앞길을 막았다. 동시에 물개의 지시에 따라 어부들이 일제히 물에 뛰어들어 관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쳐 갔다. 물개 일행이 관선에 오르는 것을 돕기 위해 뗏목 위에서는 별동대가 관선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죽창을 던졌다. 기절초풍한 것은 배에 타고 있던 관속들이었다. 겨우 암초에서 벗어난 관선은 배에 오르려는 물개 일행을 따돌리며 급하게 뱃머리를 돌려 다시 읍리나루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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