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충청매일] 설 지나고 며칠 뒤였다. 손주들이 캤다며 봄나물이 밥상에 올라왔다. 봄나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다는 바로 그 냉이였다. 순간, 나는 설레었다. ‘벌써 봄이 왔구나!’ 싶었다. 오세영 시인은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라고 그의 시 ‘2월’에서 말하고 있거니와 계절을 앞당겨 ‘벌써’라는 단어를 실감나게 하는 봄나물이 내 밥상 위에 올라왔으니 설렐 만도 하였다. 

비록 아직은 날씨도 쌀쌀하고 겨울을 완전히 벗어버린 것도 아니지만 냉이를 맛본 나는 ‘벌써’부터 봄을 마중하고 다녔다. 그리고 밥상에 오를 봄나물을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봄나물은 참 많다. 달래며 시금치, 유채가 있고, 민들레, 원추리, 두릅, 방풍나물, 돌미나리, 세발나물, 돌나물, 쑥, 취나물, 씀바귀, 머위, 참나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생김도 참 제각각이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맛과 향이 있다. 이제 얼마 안 있어 3월 중순만 되더라도 이런 나물들이 시장에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내의 정성어린 최고의 솜씨로 밥상 위에 다시 태어나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야말로 봄의 향연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겨울을 지나며 길가에 줄지어 선 가로수를 지켜 봐왔다. 잎을 모두 떨군 채 벌거벗은 몸으로 떨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서였다. 여름철의 그 푸르던 잎은 다 어디 가고 앙상한 가지에 잎 하나 없이 추위에 맨몸으로 견디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설을 전후한 어느 날 차가 막혀 웬일인가 싶어 창 밖을 살피니 그렇지 않아도 잎 하나 없는 플라타너스 가로수의 맨 위 잔가지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렇게 잔가지를 잘라내야 잎이 지나치게 무성하지 않고 가로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잔가지마저 잘린 가로수는 그야말로 맨손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외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가로수가 견디고 있는 겨울의 추위를 다시 한번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가로수는 그렇게 맨몸으로 추위와 싸우고 있었구나 싶었다. 저렇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겨울의 찬바람과 싸워야 비로소 봄을 맞아 새싹을 움트게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울퉁불퉁한 플라타너스의 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구나 싶었다.

어쩌면 냉이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들판에 낮게 누워 봄 맞이를하고 있는 냉이도 추위를 견디며 조금씩 조금씩 땅속에 제 뿌리를 내리지 않았나 싶었다. 추위로 언 땅을 비집고 강한 생명력으로 땅속 깊은 곳에서 봄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우리에게 봄을 선사할 저 많은 봄 나물도 모두 제가 자란 땅에서 추위와 싸우며 찬바람을 견뎌낸 끝에 우리에게 봄의 생명력을 전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위에 제시한 오세영 시인은 앞의 시에서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 중략-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라고 했거니와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2월 말인 오늘, 이제 봄의 시작인 3월을 맞이하면서 지난 겨울 봄을 맞이하기 위해 추위와 싸워온 냉이 같은 봄 나물에게, 플라타너스 같은 가로수에게 겸허한 마음으로 배우고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없는지 한 번쯤 뒤돌아볼 일이다.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월 말이다. 이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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