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몇 해 전 미원면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노인 한 분이 찾아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문서로 이곳저곳 주소를 묻는데 민원팀도 난감했던 모양이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소통도 잘 안되는 모습이고 해서 차분히 노인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본에서 와 연구를 한다고 하고 특정 장소를 방문하려는 듯했다. 워낙 오래전 한문으로 된 문서이다 보니 간신히 몇 곳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긴 했지만 연세도 많고 해서 걱정이 됐다. 마침 점심시간이고 식사도 못하신 듯해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한국어를 잘 하시고 소통이 잘 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노인의 이름은 다쓰타 코지. 일본에서 역사 교사로 정년퇴임하고 지금은 역사연구모임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계셨다. 이번 한국행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하시며 자료를 구하거나 인터뷰를 하기엔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안타까워하셨다.

노인은 어린 시절 조선 사람들이 일본인들에게 핍박받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본인이 교단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 일본인들이 조선에 한 부끄러운 행동들에 대해서 반성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실 많이 놀랐다. 우리는 일본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가르친다는, 그릇된 역사관을 심는 교육이 행해진다는 이야기만 들어봤을 뿐 이런 교육을 해 주는 역사 교사도 있다는 이야기들은 다들 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분의 역사관이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의 역사에 대한 얼개는 인물 중심의 영웅주의적 역사관이 다른 때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데 반해 이분은 민중들이 어떻게 저항했는지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사료를 모으고 계셨다. 비협조도 분명 민중이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사건 속 인물 중심의 역사 해석이 어쩌면 역사의 극히 일부분만을 다루고 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봤다.

노인은 일본으로 돌아간 뒤 고맙다고 편지도 해주고 이번에는 학회지도 보내주셨으나 나는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어 친절하게 체크해 주신 페이지에 있는 미원의 옛 지도를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셨던 애국지사들과 그 유족들이 여태껏 응당한 대우를 받지 못함도 서글프지만 일본에도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연구하는 이들이 있음을 모르고 있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썼다. 또한 노인의 생각처럼 그 시절을 견뎌냈던 모든 민초의 조용한 저항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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