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맞소! 나는 덕산 성내에서 온 영배라 하외다. 우리 마을 향청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시오? 난 그걸 고변하러 왔소. 향청이 뭐하는 곳이오. 부사가 선정을 베풀 수 있도록 고을 사정을 바로 알려 어려운 백성들을 도와주는 곳이 아니겠소? 그런데도 하는 일이라곤 관아의 앞잡이가 되어 고을민들 뜯어먹는 일이 주업이니 그런 향청이 무슨 필요가 있겠소? 당장 불 싸질러 버리는 게 낫지!”

“그건 우리 동네도 똑같소! 향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살펴 고을 원에게 고하는 것이 아니라, 향청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양반지주 놈들 모여앉아 부사 똥구멍이나 닦아주며 제놈들 뱃속 채울 궁리나 하는 곳이 아니오? 그게 허가받은 도적놈 소굴이지 고을민 일 보는 곳이오?”

덕산에서 온 영배라는 사람이 향청의 폐단에 대해 성토하자, 홍색기 뒤에 앉아있던 좌군들 중의 한 사내도 맞장구를 쳤다.

읍성도회에 모인 농민군들은 북진에서 했던 대로 관아의 지나친 수취제도와 양반·지주들의 착취에 대해 성토를 하면서 도회를 계속해 나갔다. 그러나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방안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청풍관아에서 해결책이 나와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청풍부사 조관재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도회장에 모인 고을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벌써 사흘째 집회를 열고 있지만 들려오는 해결책은 아무것도 없소! 도대체 농민도회지도부에서는 뭐를 하고 있는 것이오?”

“우리의 뜻을 청풍부사한테 알리시오!”

“언제까지 이렇게 앉아서 이바구나 떨며 노닥거리고만 있을 거요? 무슨 방도든 빨리 결정을 냅시다!”

“난, 농민도회에서 우리 문제를 해결해줄 때까지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오!”

“여러분들! 여기서 결판을 냅시다!”

“집에 가서 굶어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매 한가지요!”

“매 맞아 죽더라도 속이나 한번 시원하게 풀고 난 여기서 죽겠소!”

“당장 청풍부사에게 알립시다.”

“관아로 당장 쳐들어갑시다.”

고을민들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었다.

“여러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 지금 농민도회에서도 백방으로 관아와 접촉을 하고 있소이다!”

농민대장 우장규가 도회장에 모인 고을민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무슨 접촉을 어떻게 하고 있다는 것이오?”

“우 대장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말씀을 해주시오!”

좌군, 우군, 중군 여기저기서 농민도회 지도부를 향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향후 방도에 대해 물었다.

“지도부에서는 첫날 북진도회부터 여러 고을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청풍관아에 연통을 넣고 있소!”

“관아에서 기별은 왔소이까?”

“아직 오지 않았소. 그래서 청풍부사를 더 압박하기 위해 오늘 읍성에서 도회를 열게 된 것이오. 여러 고을민들께서는 우리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도회를 계속해 나갑시다!”

농민대장 우장규가 고을민들을 설득했다.

“관아에서 기별이 오지 않는데 언제까지나 도회만 계속 하오니까?”

“아니오! 오늘 도회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기별이 없으면 내일은 금남루 앞으로 장소를 옮겨 부사 코앞에서 도회를 엽시다! 그래도 우리의 뜻을 무시하면 내가 직접 관아로 들어가 청풍부사와 담판을 지을 것이오! 그러니 여러 고을민들은 진정하고 각 군장들의 지시에 따라 도회를 계속 이어가시오!”

금남루는 청풍관아의 정문이었다. 도회는 여는 장소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었다. 북진에서 열렸던 농민도회를 비롯한 지금까지의 세 차례 집회는 모두 장마당에서 열렸다. 그것은 도회를 통해 고을민들의 뜻을 모아 관아에 알림으로써 고충을 해결해 달라는 등소의 의미였다. 그러나 도회장소를 청풍부사가 공무를 집행하는 관아정문인 금남루 앞으로 옮겨 열겠다는 것은 관아를 위협하여 고을민들의 뜻을 직접 관철시키겠다는 적극적인 항쟁의 의미였다. 따라서 나라의 지시에 따라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백성들이 역으로 나라에서 파견한 관리를 위협한다는 것이니 관아 입장에서는 역모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백성들 위에 군림해오던 사족들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