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야! 이 새끼야 저리 꺼져!”

신문배달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신문보급소를 기웃 또 기웃거렸다. 보급소 사장인 듯한 사람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말을 붙이려다 욕을 바가지로 먹은 것이다. 당혹감으로 어지러이 돌아서는데 뒤통수에 비난이 비수같이 날아든다. 한 눈에 딱 봐도 글러먹은 놈이란다. 신규를 늘리고 수금도 하며 산전수전 치러야 할 가닥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눈물이 주룩 흘렀다. 그렇게 나의 열네 살배기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느 겨울은 자전거에 헌 만화책을 가득 싣고 언 손 불어가며 서울 변두리 만화 가게를 돌았다.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 해 겨울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만큼 추웠고 마음이 아렸다. 먼지마저 얼려서 뒹굴리는 겨울바람 찬 냄새가 코끝을 베어갔다. 아직도 스산하다. 그래도 만화책을 몇 권이라도 팔 수 있었던 날은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나의 십대는 깊어갔다.

가족이 예기치 못했던 아버님의 큰 교통사고와 사업의 부도가 나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14세부터 30세까지 17년 동안 나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다른 다양한 일을 훨씬 많이 경험했다. 그만큼 폭넓은 감성적 감정과 이성적 고뇌의 긴 터널을 지나왔고 난관에 굴하지 않는 정신력과 의사결정력, 문제해결력 등이 다듬어졌다. 나에겐 성장의 원천 과정이다. 다만 그 과정이 춥고 외롭고 힘들었을 뿐이다.

우리의 생은 한정되어 있고 짧다. 그런 짧은 삶에서 조물주는 나에게 많은 삶의 경험과 깨달음을 단기간에 터득하게 해주었다.

신문배달을 시작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서 가계를 꾸려 보겠다는 희망 가득한 동심이 냉대와 천대로 짓밟혔고 모멸감과 당혹감에 소름이 목 줄기를 탔다. 전신이 스멀거렸다. 그 소름의 전율은 나의 감성과 이성에게 미묘한 깨달음을 주었다.

이미 얼어버린 마음 깊은 계곡, 그곳에서 휘몰아 나와 내 코끝을 베어간 겨울바람은 나에게 차가운 인생을 알게 해 주었다. 처절하고 냉혹한 겨울을 한발 한발 스스로 뚫고 나가야 된다는 이치도 정신력도 가르쳐주었다. 또 그 겨울바람은 따듯한 정이 얼마나 절실하고 소중한지 왜 나누어야 하는지도 알게 해 주었다.  

이 모두 어린 시절 알게 된 소중한 선물이다.

곁에서 보기에 복을 타고난 것 같은 친구도 삶이 힘들다고 벅차하는 것을 종종 본다. 아마도 사람들은 모두 삶이 힘들고 아픈 부분을 어느 정도 갖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다만 활기차고 밝게 삶을 헤쳐 나가는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마음껏 아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 느끼고 깨닫는 것들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자신의 빛깔로 꾸미고 음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삶이 힘들지 않고 편안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채워지지 않음에 화가 나서 난폭해지거나 우울해 하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힘든 노력과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니 삶의 어느 부분은 원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정상이고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정상적이고 당연한 이 고난은 불행이 아니고 마음껏 누려야 할 삶의 과정인 듯싶다.

돌아보니, 내 삶에 다가왔던 그 고난이라는 겨울바람과 그때 그 시간들이 새삼 더 소중하다. 그 경험들은 나의 삶에 성장의 원천이었다. 언젠가 다시 나의 삶이 슬프고 외롭고 힘들어진다 해도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 삶을 꾸미고 엮어 가며 더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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