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기원전 712년, 노(魯)나라 은공(隱公)의 부친은 혜공이다. 혜공은 원비에게서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후궁인 계비에게서 난 자식 윤(允)을 세자로 삼으려 했다. 그러다 갑자기 죽고 말았다. 신하들은 윤이 나이가 너무 어려 혜공의 다른 후궁 중에서 난 아들 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식(息)을 군주로 추대하였다. 이가 은공이다. 은공은 부친의 뜻을 이어 윤을 세자로 삼았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노나라는 윤의 나라다. 나는 윤이 장성할 때까지 잠시 섭정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군대를 통솔하고 있던 공자 휘가 은공을 찾아와 부탁했다.

“재상 자리를 내게 주시오. 그러면 군주의 자리를 보존하게 하겠소.”

이때 공자 휘는 은공이 절대로 윤에게 권력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해두고자 했다. 은공이 대답했다.

“벼슬 이야기라면 윤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다음에 말해보시오.”

그러자 공자 휘가 은밀히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지금 백성과 신하들은 모두 군주를 따르고 있습니다. 군주께서 돌아가시면 마땅히 아드님이 권력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지금 윤이 점점 장성하니 이는 얼마 후에 군주에게 부담이 될 것입니다. 권력은 손에 쥐어졌을 때 행사해야지 넘겨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이 군주를 위해 윤을 제거하겠습니다.”

그러자 은공이 귀를 막고 뒤로 물러서며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함부로 말을 한단 말이오? 나는 곧 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이후에는 시골 토구에서 지낼 것이오. 그러니 재상 자리가 탐나면 나중에 윤에게 말하시오.”

공자 휘는 어쩔 수 없이 일어섰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혹시 은공이 윤에게 자신이 지금 한 말을 전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바로 윤을 찾아가 말했다.

“은공이 오늘 저를 불러 몰래 세자를 살해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자 윤이 그 말에 깜짝 놀라 벌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공자 휘가 살아날 방법을 이야기하였다.

“내일 저녁은 은공이 종무신을 모시는 사당에 기도드리러 가는 날입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니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러자 세자 윤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그대가 이 일을 맡아준다면 내 그대에게 재상의 벼슬을 주겠소.”

그렇게 공자 휘는 벼슬자리를 확약 받았다. 다음날 저녁 공자 휘가 보낸 군사들이 사당으로 들어서는 은공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사당의 책임자를 은공의 살해범으로 몰아 죽였다. 그것이 공자 휘의 소행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나 감히 두려워 누구도 말할 수 없었다. 공자 휘는 이어 윤을 군주로 추대하였고 자신은 재상에 올랐다. 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토구지계(菟裘之計)란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욕심이 없는 것처럼 곧 토구 시골에 내려가 살 거라 말하는 계략을 뜻한다. 어물어물하고 결단력이 부족해 화를 당하는 사람을 말할 때 쓰인다. 인생에 다음은 죽음뿐이다. 그러니 지금 생각하는 것을 당장 실행하라.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