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또 농민지도부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고을민들이 모였다. 첫날 농민과 사족이 주축이던 구성원들도 객주·보부상들 같은 장사꾼들, 심마니 같은 약초꾼들, 나무를 하는 초군들, 뱃꾼들, 절집의 스님들까지 도회에 참여하며 계층 간에 토로하는 문제들이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모든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지도부에서는 당연히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도회에 모인 고을민들도 입으로는 관아와 양반, 지주들을 질타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아직 그들에 대한 막연한두려움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도회에 참가했던 고을민들이 우장규의 강경파로 돌아선 것은 청풍관아로 갔던 지도부 사람들에게 행한 조관재 부사의 비열한 작태가 도회장의 사람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도회가 열리자 농민지도부의 온건파들은 몇몇의 사람들을 선별해서 청풍관아로 보냈다. 도회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고 고을민들의 고충을 알려 부사와 아전들의 각성을 촉구하자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청풍부사 조관재는 농민도회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농민들의 도회에 대해 멸시의 발언을 하고 농민대표로 갔던 사람을 매질까지 해서 옥에 가둬버렸다. 이는 고을민들의 절실한 바람을 무시하고 겁을 주어 꺾어버리겠다는 용렬한 행위였다. 조 부사는 고을민들의 고충을 들으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도회의 모든 고을민들이 분노했다.

“당장 쳐들어가 청풍관아를 불 질러 버립시다!”

“조관재를 잡아다 각을 뜹시다!”

“향청도 박살내자!”

“철시를 하고 모두들 항쟁에 참가합시다!”

밤이 깊어가도 도회가 열리는 장마당에서는 함성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동안 잠잠했던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우장규는 모든 상가를 철시하고 적극적으로 항쟁을 하자고 주장했다. 강경론자 중에서도 극강경론자인 이창순은 당장 청풍관아로 쳐들어가 부사의 가죽을 벗겨버리자고 사람들을 선동했다.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은 관아와 한통속이 되어 부사와 아전들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의 요구에 따라 도결을 묵인하여 고을민들을 도탄에 빠뜨린 향청과 양반들의 집도 박살내자며 들썩거렸다. 농민도회의 지도부들이 급하게 회합을 소집했다.

“고을민들의 뜻이 저러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이까?”

대세는 자신의 뜻대로 강경론으로 기울고 있었지만, 우장규가 사족대표의 온건론자인 유겸호에게 물었다.

“아직 우리가 등소한 해답이 오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항쟁에 돌입하는 것도 좋을 듯 하오만…….”

도회장에서 들려오는 분노에 찬 고을민들의 함성소리에 한풀 꺾인 유겸호가 말꼬리를 흐렸다.

“아니 아직도 그놈의 등소 타령이오!”

이창순이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불 같이 화를 냈다.

“자아, 중요한 시기에 서로 힘 낭비하지 말고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소이까?”

이번에도 중도론자인 하익수가 중재를 하며 타협안을 내놓았다.

“어떤 수요?”

“이틀째 도회를 열어 고을민들 뜻도 알았고, 청풍부사에게도 그 뜻을 알렸소. 그러나 부사는 고을민들의 뜻을 묵살했소. 아직도 부사는 농민도회의 실상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소. 그러니 이번에는 장소를 읍성 내로 옮겨 부사 코앞에서 도회를 여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그래도 부사가 꼼짝을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때는 우리도 관아로 쳐들어가 힘을 보여줍시다!”

“좋소이다!”

농민도회 지도부들도 모두 찬성했다.

“읍성 내 도회 장소는 어디가 좋겠소?”

“아무래도 사람들이 왕래가 많은 청풍장이 좋을 듯싶소이다.”

농민도회의 세 번째 집회장소는 청풍읍성 내 향시가 열리는 한천 장마당으로 결정되었다.

“결정된 사항을 도회장에 있는 고을민들에게 알리고, 지도부 임원들께서는 내일 읍성도회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주시오!”

농민도회의 회합이 끝나자 유장규가 지도부들을 독려했다. 그때까지도 도회가 열렸던 장마당에서는 사람들이 외치는 함성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농민도회 지도부에서도 집회장소가 청풍장으로 바뀌었음을 알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고을민들을 운집시키기 위해 밤을 다퉈 각 마을로 사발통문을 띄웠다. 첫날 도회와는 달리 두 번째 날은 밤새 도회장을 지키는 고을민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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