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나는 삼막골에서 온 성은 권가고 이름은 홍무라는 사람이오. 내 팔대조 할아버지께서 충주관아에서 절제사를 했소. 여러 농군님들네는 양반이라고 욕하지만 양반도 양반 나름이오. 내 행색을 보시오. 내가 양반이라고 농민보다 나은 게 뭐가 있소. 양반도 예전 얘기요. 이젠, 양반도 돈 없으면 양반 노릇도 못하오. 그래도 예전에는 양반들에게 세금이라도 면해 주었으니 뱃속에서는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나도 행색을 차리고 나서서 행세라도 했소. 그러나 이제는 우리에게도 관아에서 인징·족징에 통환까지 부과를 하니 살기가 너무 구차스럽소. 야반도주라도 하고 싶지만 그까짓 양반이 뭔지 그까짓 체면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그래도 양반이라 관아 아전들과 다투는 것이 싫어 있는 것 없는 것 몽땅 모아 납부를 해도 소용이 없소. 세금에 쫓겨 목을 매거나 도망가는 이웃들이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보다 많으니 노다지 밀려오는 세금을 어떻게 감당하겠소? 밑 빠진 독이오. 이런 형편인데도 관아 독촉은 서릿발 같으니 사족이라고 세금을 내지 않고 견딜 수 있겠소? 만약 세금을 내지 않으면 도적으로 몰아 관아에 잡혀가 봉변과 모욕을 당하기 일쑤니 이런 양반도 양반이오? 그래도 동네에서는 양반집이라며 먹고살 일거리도 주지 않으니 베짱이처럼 이슬만 빨고 살아야 하오.”

삼막골에서 왔다는 권홍무는 양반 피를 받은 것이 원수라며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렇소. 남 보기에 허울 좋은 양반일 뿐이오. 나는 서당리에 사는 표 생원이오. 내 비록 이제는 평민이나 다름없는 신세로 조락했지만, 그래도 윗대에서는 유세께나 떨었던 집안이오. 그래서 나 또한 선조님들 유지를 받들어 마을에 구심점이 되어 사람들의 어려움을 관아에 알려주고 해결해주며 살아왔소. 그것이 양반으로서 내가 마을에서 당연히 할 일이고 체면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소.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체면은 내 목숨과 같은 것이었소. 그러나 이제 체면이 땅바닥에 떨어졌으니 나는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오. 여러 농군님네들 사람이 굶어 죽어가는 판에 무슨 놈의 체면 타령이냐며 욕을 해도 나는 굶는 것만큼이나 중하오. 수일 전 관아에서 군졸과 관노들이 우리 집에 들어와 서책과 의복을 몰수해갔소. 그들은 아녀자들이 기거하는 안마당까지 뛰어들어 적안귀처럼 눈을 부라리고 난봉질을 하며 안방 살림까지 난장판을 만들어놨소. 놀란 집사람과 딸들이 어쩔 줄 몰라 울고불고하기에 내가 그들을 말렸소. 그랬더니 그 불한당 놈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오? 나를 오랏줄로 묶어 마당에 꿇리고는 가솔들이 보는 앞에서 마구 손찌검을 하며, 관곡을 떼어먹고 갚지도 못하는 주제에 허세는 살아있다며 발로 차며 능멸을 했소. 이렇게까지 능멸을 당하고 살아 뭐하나 하는 생각에 분해서 죽으려고 곡기를 끊고 드러누웠는데 처자들이 눈물로 말리는지라 일어나 여기를 오면 분한 마음을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해서 나왔소.”

표 생원은 얼마나 분했으면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몸을 떨었다.

북진도회장에는 농민들이나 머슴들뿐만 아니라 양반들까지 나와 관아의 횡포에 대해 성토를 했다. 어느 한 곳 성한 데 없이 그만큼 세상은 기울어져가고 사람들 삶은 피폐해져 있었다.

“여러분이 깨어야 삽니다! 양반도 상놈도 사람입니다. 양반도 상놈도 똑같은 백성입니더. 상놈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양반들 핍박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백성이기 때문에 나랏님에게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따른다면 평생 종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랏님이 백성을 보살피지 않고 핍박을 하는데 백성만 무조건 따를 이유가 뭐 있소? 우리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의 할 말을 전합시다.”

농민대표 우장규가 도회장에 모인 고을민들을 선동했다.

“와아!”

“와아!”

광장에 모인 고을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관아를 향해 소리를 지릅시다! 와아!”

“와, 와아!

우장규의 선창에 따라 도회에 모인 농민들이 강 건너 청풍관아를 향해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이틀 동안 북진에서 열렸던 농민도회에서 고을민들은 관아의 과중한 세금과 양반, 지주들의 혹독한 소작료가 고을민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며 입 모아 성토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지속된다면 이래저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모두들 낫자루라도 움켜쥐고 일어서야 한다고 소리 내어 떠들어댔다. 그러나 고을민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농민지도부에서는 여전히 방안을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특히 농민들의 절박한 입장을 대변하는 우장규를 비롯한 강경론자들과 그래도 농민들보다는 사정이 나은 몰락한 양반들을 대변하는 유겸호를 비롯한 온건론자들은 이틀에 걸친 북진에서의 농민도회가 끝났음에도 분명한 입장 표명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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