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성질대로만 한다면 부자놈들 곡간을 때려부수고 쌀을 몽땅 풀었으면 좋겠지만 국법이 있으니.”

“국법은 무슨 개뼈다귀 같은 국법이랴. 농민만 파먹는 국법? 저희 놈들은 법 위에서 온갖 지랄들을 다 떨면서 힘없는 백성들만 지키게 하는 것도 법이랴?”

“그러니까 법이지!”

“에이, 더러운 놈의 세상, 확 뒤집혀 버리지도 않나?”

밤은 점점 깊어져 가는 데도 도회장에 남은 농민들의 분노는 점점 더 솟구치기만 했다. 그 시각 북진여각에서는 최풍원과 농민지도부들 사이에 능강 도회소에서 했던 약속이 이행되고 있었다.

“최 대행수, 여각도 힘든데 이렇게 협조를 해줘 고맙소이다.”

“아니외다. 우리 여각 형편이 좋지 않아 더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할 뿐이외다.”

“아니오이다! 어제 도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끼니를 제공하고, 비록 한 줌씩이라도 양식을 들려 집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최 대행수의 덕분이오. 우리 농민도회소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큰 도움이 되었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우장규의 표정과 말투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우 장군, 도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생각이오?”

최풍원은 농민도회소에서 벌어질 앞날이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게 우리 몇몇이 이끈다고 이끄는 대로 되겠소이까? 농민들 뜻이지요. 다만 우리 지도부는 그들의 뜻을 관청에 전하는 심부름꾼 아니겠소이까?”

아직은 우장규도 농민도회의 추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우 장군, 혹시라도 봉기가 일어나면 우리 여각을 좀 보호해 주시오!”

사람들이 떼를 이루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최풍원이 농민들이 운집해 일어날 수도 있는 불상사를 염려하며 우장규에게 미리 부탁을 했다.

“최 행수, 걱정 마시오! 내가 수하들에게 단단히 일러 놓겠소.”

우장규가 약속을 했다.

이튿날 이차로 열린 북진의 농민도회장에는 어제보다도 훨씬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어제 도회에 다녀갔던 사람들이 북진장에서 열리는 도회에 가면 밥도 주고 양식도 준다고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었다. 농민대표들과 사족 대표들에 이어 오늘은 객주, 보부상, 초군들 대표까지 합세를 해 지도부 인원만도 배가 늘었고, 고을민들의 수는 몇 배나 늘어났다 북진 장마당을 그득하게 채우고도 넘쳐 나루로 내려가는 고샅들까지 사람들로 그득했다. 도회소 지도부들도 모인 농민들도 운집한 사람들을 서로 보며 큰 힘을 얻었다.

다시 둘째 날 도회가 시작되었다. 첫째 날 도회에서 얻은 경험이 바탕이 되어져서 지도부나 군중들이나 어제처럼 우왕좌왕하지 않고 곧바로 관아와 양반들 성토에 들어갔다.

“양반은 헛기침만 하며 거들먹거려도 사람대접 받으면서 잘살고, 장사치는 돈으로 양반과 결탁하여 그 세가 양반만 하니 배불리 먹으며 유세를 떠는 데 우리 같은 힘없는 백성들만 소처럼 일을 해도 초상집 개 채이듯 채이며 사람대접은 고사하고 굶기를 밥 먹듯 하니 이런 세상에서 언제까지 살아야 합니까?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나눠먹고 모든 백성이 똑같이 대접받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지 않소?”

청풍읍성 내 북하리 토호 김 씨 집 외거노비인 양태술이 사람들 앞에 나서서 핏대를 세웠다.

“옳소! 그까짓 양반피 따로 있답디까. 돈이 양반인 세상이오. 돈으로 양반을 사고, 쥐똥만큼 피가 튀었다고 양반이고, 이래 양반, 저래 양반, 열에 일곱은 양반이니 누가 일을 하고 누가 종살이를 한답디까? 그저 부랄 두 쪽 달린 몸뚱이만 있는 농민 무지랭이만 종놈으로 남았으니 세 놈 종이 일곱 양반을 먹여 살리는 형상이니 죽어나는 놈은 누구겠소! 이러니 죽어라 일하면 뭣 합니까? 다 빼앗기고 굶기는 매양 한 가지지!”

“백번 지당한 말이오. 워째서 죽느니 맨날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농민들이냔 말여. 힘 있는 양반놈들 배때기에는 기름만 쌓이니 우리 같은 놈들 뱃가죽이야 창자에 붙든 등대기에 붙든 알기나 할 거여?”

“양반네들이나 중한 목숨이지, 우리 같은 상놈들이야 어디 목숨이 있는가?”

“그려, 이런 더러운 세상 한시라도 빨리 떠야하는디, 복 많은 것들은 급살병에라도 걸려 잘도 죽는디, 우리 같이 천한 것들은 명줄까지 질기게 타고나 죽지도 않고 이 고생이구먼.”

일어서서 발언을 하는 농민들마다 돌아가며 양반들을 성토했다. 운집한 고을민들 사이에서 호응하는 박수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대놓고 양반 욕하는 소리를 처음 듣는 촌로들은 놀라 옆 사람 눈치만 살폈다.

[박홍윤 교수의 창]대법원장

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사법부의 수장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국민을 여러 차원에서 실망하게 하고, 검찰개혁과 함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이 탄핵을 이유로 사표 수리를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하자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임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했는데도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하루가 되지 않아서 두 사람의 대화 녹취가 공개되자 거짓말하는 정치인과 똑같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하여 송구하다는 사과의 말로 마무리하고자 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는 견제와 균형이다. 우리의 경우 대통령 중심제로 대통령의 실질적 권력이 강하고, 대법원장을 국회의 동의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이념에 의하면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은 그 업무에서 서로 독립되고 동등한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가운데 대법원장은 민주주의 헌정질서 유지에 그 기능이 중요하여 대통령이나 국회의장보다 임기를 길게 하여 6년으로 하고 있다.

녹취록을 보면 대법원장이 여당의 정치적 탄핵에 동조하고 있고, 그 행보를 보면 검찰 개혁을 위시한 사법 개혁에서 정치권과 같이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민주주의의 헌정질서에 최후의 보류가 되어야 할 사법부 수장이 사법부 독립을 포기하고 행정부나 정치권에 동조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한 것이다. 여당은 국회가 그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탄핵하였다고 하나, 대법원장은 자신에 대한 보은 인사에 보답하기 위해 사법부의 독립을 포기한 듯한 모습을 불식시키기 어렵다.

두 번째 조직 차원에서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그의 독립성이 침해되는 것을 막고, 구성원이 본연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이는 제 식구 감싸기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임 부장판사가 정치권의 외풍을 수용했다는 비난으로 탄핵을 받았지만, 사법부 수장이 그 탄핵에 동조한 것은 조직의 장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대법원장의 거짓말로 사법 개혁, 검찰 개혁이 국민을 위한 개혁도, 정의와 사법권의 독립을 위한 개혁도 아니라는 것이 더 명확해지고 있다.

세 번째는 개인 차원의 문제이다. 대법원장을 비롯하여 법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헌법은 명시하고 있다. 법관이 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판 과정에서 거짓말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이다.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검사와 법관의 그 양심을 올바르게 하여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거짓말하고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수장이 있는 사법부가 존속하는 한 사법부로부터 정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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