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활터가 사격장이 아니라면 어떤 곳이었을까요? 활터는 요즘으로 치면 고위층의 사교클럽 같은 곳이었습니다. 1970~1980년대의 골프와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쉬다 가는 곳이었고, 동시에 건강을 챙기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쉴 만한 좋은 수단과 즐거움이 있다면 당연히 비용이 들더라도 갖추려 할 것이고, 그런 즐거움 중의 하나가 예술이었습니다. 사회 고위층이 활쏘기하면서 장구 치고 논다고 비아냥거린 백성들의 마음은 이해 못 할 바 아니나, 그런 시각이 간과하기 쉬운 면이 바로 전통문화의 측면입니다. 활터는 여러 가지 전통문화(음악, 붓글씨, 춤, 체육)가 뒤섞인 복합전통문화공간이었던 것입니다.

예컨대 활쏘기 대회를 하면 사격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활 쏘는 한량이 있어야겠지만, 그들을 응원하는 소리꾼들이 있어 음악이 있고, 또 성적을 기록하는 획지라는 게 있어서 그것을 붓글씨로 썼습니다. 그리고 과녁을 많이 맞히면 일어나 덩실덩실 춤도 추어야 했습니다. 적어도 활쏘기는 음악과 붓글씨와 무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호화로운 생활로 지탄받았겠으나, 거꾸로 생각해보십시오. 만약에 지금 그런 활쏘기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고도 남을 그런 훌륭한 문화재일 것입니다. 세계에서 활을 쏘면서 음악을 동원하고 붓글씨를 동원하며 전통 무용까지도 함께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충북예술고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예술고에는 국악을 전공한 학생들이 있어서 저를 비롯한 활량들이 노는 곳에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물론 학교의 정식 공문 결재를 받아서 전통 문화체험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때 옛날의 획창을 가르쳐주고 활을 쏘는 한량들의 뒤에서 맞히는 대로 시연을 시켰습니다. 새로운 이색 체험과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한 학생들은 그 뒤로도 구경시켜 달라고 해서 몇 차례 대회 때마다 불러서 획창을 가르쳤고, 활음계(회장 김은빈)라는 모임을 결성하여 답사도 다녔습니다.

2019년 4월의 일입니다. 많은 학생이 대학 진학으로 청주를 떠났고, 마지막으로 가르친 아이들은 고3 수험생이 되어 이번 대회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획창 없이 그냥 활쏘기만 했습니다. 3순 경기 중 2순째 접어들자 몇몇 한량들이 저에게 찾아와 한마디씩 합니다.

“교두님, 뒤에 획창이 따라붙지 않으니까 싱거워서 활 쏘는 맛이 없어요. 이거 어떡하면 좋아요. 우리가 너무 고급으로 놀았나 봐요!”

저도 절실히 느끼는 바였습니다. 그걸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참석자가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활쏘기는 단전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려서 쏩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청이 고음을 뚫고 올라가면 아랫배에 저절로 힘이 들어갑니다. 활 쏘는 한량 뒤에서 이런 소리가 뒷받침하면 기운이 한결 더 차오릅니다.

활쏘기는 승부를 겨루는 시합이지만, 활터는 적어도 서너 가지 전통문화가 함께 어울려 생생하게 살아있는 ‘복합전통문화공간’입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아직은 그렇습니다. 이것이 활터를 사격장이라고 규정하면 어쩐지 허전해지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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