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엘렌 랭어는 저서 ‘마음의 시계’에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했다. 이른바 ‘시계 거꾸로 돌리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연구는,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노인 8명을 20년 전으로 돌려보내고 그들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59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때의 풍경으로 가득 꾸며진 집에서 그 시대에 방영되었던 뉴스와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그 시대의 노래를 부르고 영화를 보게 했다. 가족이나 간병인의 도움 없이 요리와 설거지, 청소 등을 하면서 일주일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일주일 후, 충격적인 변화가 있었다. 8명의 체중이 늘고 시력, 청력, 악력이 향상되는 등 신체 나이가 20세 이상 젊어진 것이다. 타인의 부축 없이 걷기도 힘들었던 노인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걸었고, 어떤 이는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 별도의 약이나 치료, 식이요법을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주변 사람들도 훨씬 젊게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놀라운 실험의 의학적 객관성과 증명과는 별개로 필자는 이 실험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믿는다. 몸은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반영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고 산다. 건강을 위해 헬스장에 등록하고 달리기를 하며 식사를 조절하지만, 마음의 상태에 신경 쓰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엘렌 랭어 교수의 실험은 왜 마음의 상태를 신경 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 실험처럼 우리 주변에 마음과 몸을 치유할 수 있는 ‘타임머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우연히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런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청주시 동네기록관으로 지정된 ‘터무니’에는 1970~80년대의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초등학교 운동회 사진, 생활기록부, 동네 구멍가게의 물건들, 미닫이문과 마룻바닥, 창호지 문과 장난기 어린 손 구멍, 난로 위의 노란 도시락(변또)들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필자를 과거로 데려갔다. 사실, 이런 추억의 공간은 웬만한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기는 하다.

그런데도 필자에게는 이 ‘터무니’가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고, 터무니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엘렌 랭어 교수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이 아주 강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 가슴이 뛰었고, 장소와 사람에 대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터무니’를 다르게 느끼게 한 것일까? 스스로 궁금해졌다.

돌아와서 곰곰이 감정을 정리해 봤다. 관광지에서 흔히 봤던 비슷한 공간과 왜 다른 느낌이었고, 가슴은 왜 뛰었는지 생각했다. 답은 ‘관계의 재생’이었다. ‘터무니’는 단순히 보는 곳이 아니라 관계하는 곳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찾아오고, 대화하고, 먹거리를 나누는 장소였다. 동네 노인들에게 ‘터무니’는 엘렌 랭어의 실험실보다 더 큰 존재이다. 하루 종일 집과 경로당에 격리되었던 노인들이 밖으로 나와 과거의 자신을 만나는 곳이다. 노인과 장년과 어린 세대들이 연결되는 곳이다. 과거와 현재, 세대와 세대의 관계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재생의 공간이기에 가슴이 뛰었던 것 같다. 대표님의 외로운 미소 뒤에 가려진 인고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주변의 회색빛 높은 건물들이 ‘터무니’를 아름답게 빛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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