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충청매일] 지난시절 농촌에서는 춘하추동 철마다 하는 일이 따로 있었는데 지금하고는 아주 다른 아름다운 추억의 산물이다. 겨울의 농촌은 농한기이지만 다가오는 봄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고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야하기 때문에 한가롭게 마냥 쉴 수가 없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일을 찾아야 했고 청소년들은 그들대로 어른들 눈치 보며 친구들과 겨우내 놀 준비를 했다.

그 시절 농촌의 청소년들은 겨울이 다가오면 먼저 마을에서 제일 가깝고 큰 논에 물 나가는 곳을 막고 물을 모아 얼음판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그러면 그곳이 겨울 내내 또래 친구들 또는 형 아우들과 어울려 갖가지 놀이를 하며 뛰놀 수 있는 아지트가 됐다.

그곳에서 놀았던 놀이로는 얼음이니까 무엇보다 스케이트인데 그것도 구두 밑에 붙은 공장에서 만들은 세련된 게 아니고 송판 밑 양쪽에 철사나 쇠로된 날을 박아 송곳을 잡고 타는 거였다.

그러다 조금 큰 형들은 날을 양쪽이 아니고 가운데 하나만 박아 균형을 잡고 타는 스케이트였는데 양날보다 스릴이 있고 멋이 있었다.

얼음판위의 두 번째 재미난 놀이로는 팽이치기였다. 팽이도 공장에서 제조한 잘 다듬어진 팽이가 아니고 나무를 깎아 만들고 밑 부분 가운데에 쇠로된 다마를 박은 수제 팽이였다. 팽이끼리 서로 맞추기도 하며 시합을 하곤 했었는데 재밌었다.

이외에도 얼음판 위에서 놀던 놀이로는 축구, 눈싸움, 얼음 치기 등이 생각난다. 겨울이 되면 논에 물대어 얼음판 만드는 것 외에 한적한 비탈길을 찾아 미끄럼틀을 만들고 비료포대 등으로 깔판을 만들어 미끄럼을 탔다. 그밖에 겨울놀이로는 쥐불놀이, 윷놀이,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제기차기, 숨바꼭질 등 자연물을 이용한 놀이가 많았다. 그 당시 농촌 청소년들은 봄이나 여름 그리고 가을에는 어른들 따라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마음껏 놀 수 없었고 그래도 겨울은 어느 정도 허락이 됐었다.

어른들은 겨울에도 가족들 생계를 위해 일을 찾아 해야 했기 때문에 겨울은 더욱 힘든 고난의 시기다. 어른들 일로 제일 중요한건 겨우내 집안을 따뜻하게 해야 했기 때문에 겨울이 다가오면 초가지붕을 새로 잇고 눈 쓸 싸리비 만들고 겨울엔 땔나무를 주로 했다. 그 시절엔 집집마다 나무를 땠기 때문에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라 나무하려면 집에서 최소 한 시간 이상은 가야했고 많지 않았다.

낮에는 나무를 했고 밤에는 사랑방에서 또 일을 찾아했다. 밤에 하는 일로는 주로 새끼 꼬는 일을 기본으로 삼태기, 가마니, 멍석 등을 만들었다.

그 시절엔 먹을 것이 부족하여 밤에 힘들게 일을 하고도 그냥 헤어지곤 했는데 어쩌다 누구네 집에서 묵을 쑤었다든가 두부를 만들거나 하면 밤참으로 나누어 먹었는데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때는 너도나도 없었지만 인심이 좋아 누구네 집에서 무얼 만들면 이웃과 나누어 먹는 아름다운 정이 있었다.

지난세월 겨울 모습은 한마디로 춥고 배고팠지만 자연을 벗 삼아 놀던 낭만과 추억이 있었다. 요즘은 모든 면에서 옛날에 비해 풍족하고 넘치지만 지난세월 겨울 아름다운 풍습은 찾을 수 없고 추억으로만 남아있어 그 시절이 그립고 애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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