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관아나 양반들 눈치를 볼 것 없소. 이 자리는 우리 고을 농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점을 말하고 이를 듣는 자리니 두려워 말고 모두들 속마음을 털어놔 보시오!”

농민도회에 모인 고을민들이 서로들 눈치만 살필 뿐 반응이 없자, 사족 대표 유겸호가 재차 독려를 했다.

“우리 같은 무지랭이들 의견을 들어 뭘 하겠다는 거래유?”

“도회에서 고을민들의 여러 의견을 들어보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면 관아로 몰려가 우리의 억울함을 알릴 것이오!”

우장규가 강경론을 군중들에게 내세웠다.

“그러다 관아 아전들 눈 밖에 나거나 잡혀가 맞아죽으면 누가 책임질 거유?”

“그러니까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힘을 뭉쳐 관아를 위협해야지요!”

“너무 위험한 일 아니래유?”

“맞어! 우리 같이 천한 농군이 관아에 대드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잖여.”

“그래유. 우리 동네 근식이는 부사 행차 길을 막고 괭과리를 치고 격쟁을 했다가 관아에 끌려가 반병신이 돼 나왔잖여?”.

“그러게. 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숫제 난리를 일으키자는 것 아니여?”

고을민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꼭 그렇지만은 않소! 우리 고을민들의 의견이 모아지면 일단 관아에 알릴 것이오. 그리고 난 다음 관아의 답변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할런지 결정을 할 것이오!”

유겸호가 우장규와는 정반대의 온건한 투쟁 방법을 내세웠다.

“그 숭악한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농군들이 이야기한다고 들어주겄소? 여드레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 하지도 마쇼. 택도 없소!”

“맞소. 우리가 어디 한두 번 억울함을 관아에 탄원 했소? 그런데 우리한테 가타부타 답 한마디 해준 수령이나 아전 있었소? 그놈들 코웃음은 커녕 눈도 씽끗 안할 거요.”

농민들이 모인 첫 도회는 시작부터 강경론과 온건론으로 나뉘었다. 도회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투쟁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자, 관아에 알리는 방법은 차후의 일이니 그때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 억울한 사정들부터 들어 봅시다.”

농민지도부 뿐만 아니라 고을민들까지 의견들이 양편으로 갈려 대립했다. 그러자 사족출신으로 중도론 입장인 하익수가 도회에 모인 농민들의 고충부터 먼저 들어보자며 방향을 틀었다.

“도대체 관아는 뭣 때문에 있는 것이오. 이건 관아가 아니라 숫제 도척들 소굴이오.”

“차라리 도둑이 아전들보다는 나을 거여. 그놈들은 염치도 없어. 아귀가 붙었는지 그렇게 처먹어도 배도 터지지 않는 게비여. 며칠 전 일을 나갔다가 저녁나절에 집에 갔더니만 글쎄 마누라쟁이가 봉당 끝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거여. 그래,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만 글쎄 관아에서 이방이 나와 집안을 샅샅이 뒤지더니 작년 이맘때쯤 굶어 돌아가신 어머이 제사에 쓸라고 벽장에 숨겨놓은 쌀 봉지를 뺏어 가지고 갔다는겨. 그게 인종이여? 개씨지! 그게 갓을 썼으니 양반인 줄 알지 도둑보다 나을게 뭐 있어. 칼 든 도둑도 갓 쓴 도둑놈처럼 염치 없지는 않을거구먼.”

“저런 때리쥑일 놈들! 지 놈들은 조상도 없나? 살아서 못 잡수신 이밥, 대상 때라도 한번 푸지게 올리려는 자식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을테지.”

“나도 얘기를 해볼테니 한번 들어들 보슈. 나원참! 말을 할라니께 기가 맥혀 말이 나오덜 않네 그려. 원래 나는 여기가 고향이 아니고 타관에서 온 사람이유. 이제는 그럭저럭 살고 있지만, 이사를 왔던 첫해 봄에는 너무 살기가 벅차 관아 환곡을 닷 말 얻어먹고 겨우 춘궁기를 넘겼소. 백지 아는 사람도 없는 타관에서 죽을 목숨 서넛 우리 가솔들을 살려줬으니 관아 아전들이 얼마나 고마웠겠소? 그래서 가을에 어깻죽지가 벗겨지도록 일을 해 이자까지 일곱 말을 마련해 갚으러 갔더니 한 섬 반을 내라는 거요.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전에도 빌려간 쌀이 있다는 거요. 그럴 리가 없다고 했더니 장부를 내보이며 틀림없다는 게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장부에 적혀있는 날짜에 난 여기에 살고 있지도 않았다고 했더니, 전에 있던 호방이 해 놓은 장부라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거요. 장부에 내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갚아야 한다는 게요. 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소. 하도 억울해서 여기저기 하소연을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놈이 없었소! 먹지도 않은 환곡을 물어낸 것보다도, 저들 맘대로 장부를 조작해 놓고도 요리조리 핑계만 대며 나 몰라라 하던 관아놈들을 어찌하지 못한 것이 더 억울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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