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 마당에 내가 뭘 숨기겠소. 내 집에 곡물이 가득하게 있다면 고을민들이 저리 굶어죽어 나가는 데 못 본 척 곳간에만 쌓아놓고 있겠소이까? 고을민이 다 떠나고 없으면 난들 혼자 장사를 할 수 있겠소이까? 북진여각도 몹시 힘든 지경입니다!”

최풍원이 당장이라도 자기를 따라가면 곳간 문을 활짝 열어 보여주겠다며 농민도회 수뇌부들에게 북진여각이 처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 어찌 일만 냥이나 기부를 하신답니까?”

“그야 우리 고을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데, 이곳을 터전으로 고을민들 덕분으로 평생 장사를 해왔으니 어떻게든 도움을 주는 것이 사람된 도리 아니겠소이까?”

“최 행수 같은 분을 우리 도회소 좌장으로 모시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아쉽소!”

우장규가 최풍원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끝내 아쉬워했다.

“장인어른, 그 큰돈을 어떻게 마련하시렵니까?

도회소에서 나와 북진으로 돌아오는 길에 봉화수가 물었다.

“지금 장사도 그렇고 하는 일마다 지치고 있는데 무슨 돈이 있겠는가? 사전을 주조해야지.”

최풍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장인어른, 그건 목숨을 내놓는 일입니다.”

“이미 내놨네!”

“무슨 말씀이온지?”

“지난 번 수적을 만나 강탈당했던 탄호대감의 돈이 어디서 나왔겠느냐? 이미 그때 십오만 냥의 사전을 주조해서 여각의 위기를 넘겼다.”

“예? 그럼 그게 사주조한 돈이었단 말입니까?”

“그렇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아시면서 어찌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북진여각을 유지시키고 삼개상전을 보존하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인어른,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고, 이번 일이라도 그만 두십시오!”

“아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 난관만 넘기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최풍원이 단호한 어투에 봉화수도 더 이상은 말릴 수 없었다.

“화수야, 북진여각의 명성을 되찾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세상도 바뀌고 내 장사도 구식이 되어 버렸어. 모든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거기에 따라 사람의 운대도 있는 법이다. 이제부터는 네가 한양에서 익힌 신식 방법으로 삼개상전을 주축으로 끌어나가야 할 것 같다. 명심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당부하마. 장사가 돈을 버는 일이기는 하지만 인심을 잃으면 망한다. 좋은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나쁜 소리는 천리를 간다. 사람들 마음을 읽어야 한다. 인심을 얻으면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 처하더라도 살아날 수 있지만, 인심이 떠나면 살아도 죽은 목숨이니라. 장사는 인심을 얻는 것이 제일 중하단다. 이 또한 각별히 명심하거라!”

북진나루 너른 호수에 붉은 노을이 가득했다. 지는 해였다.

④ 북진에서 농민들 도회가 열리다

농민도회소는 북진여각 최풍원 대행수가 다녀간 후 큰 활력을 얻었다. 농민지도부는 북진 장날에 열기로 한 첫 도회를 위해 발 빠른 준비를 해나갔다. 농민지도부가 북진을 첫 도회 장소로 삼은 것은 지리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진은 앞으로는 넓고 깊은 강이 있어 만약 청풍관아에서 농민들의 집회를 알고 군졸들이 달려온다 해도 강을 건너기 전에 미리 알 수 있어 대비하기에 유리하고, 만약 강을 건너왔다 해도 뒤에는 금수산 줄기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어 사방으로 피신하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루터와 장시가 열리는 곳이어서 사람들이 산지사방에서 모여들었기에 인원을 동원하기가 용이했다. 농민 도회소에서 북진을 농민들의 의견을 듣는 첫 도회지로 삼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드디어 달이 바뀌고 첫 장이 서는 날, 북진에서 농민들의 첫 도회가 열렸다. 청풍고을 각 마을에서 모인 대표자들이 장마당 복판에 모여 앉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이삼백명의 고을민들이 운집하여 농민지도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여러 고을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함이요. 그러니 누구든 기탄없이 자기 의견을 말하기 바라오!”

농민대표 우장규가 군중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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