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엄마의 기일이 다가온다. 일 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 지금도 시골에 계실 것 같고 병마와 싸우던 어느 병실에 홀로 누워 계시는 것도 같다. 특별한 상황과 마주했을 때 엄마의 부재가 실감 나지만, 특별할 것도 서러울 것도 없다. 슬픔이 온전히 슬픔으로 다가오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아내가 가게를 옮기면서 퇴근 후 집안 살림은 나의 몫이 되었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밥을 안치고 없는 솜씨에 찬을 준비한다. 서둘러도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기껏해야 콩나물국이나 카레, 계란말이 정도가 전부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오늘은 뭘 해 먹나 걱정이 앞선다.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콩나물, 두부, 어묵을 사고 별다른 기술 없이도 조리 가능한 냉동식품을 산다. 그래도 남의 손맛을 빌어 차린 밥을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엄마의 마음일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먹는 저녁이 이렇게 신경 쓰일 줄 몰랐다. 오랜만에 마음먹고 생선조림을 하려고 고춧가루를 찾아보니 없다. 김치도 다 떨어졌고 고추장도 기성 제품을 산 지 오래다. 생각해보니 이게 마지막 시골 고추장이라고 남들에게 생색냈던 기억이 난다.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참기름도 마늘도 장아찌도 없다. 볶은 옥수수도 없고 콩자반도 없고 볶은 깨도 된장도 없다. 냉장고가 싸늘하다. 냉동실에 처박아 두고 버린 지난날의 먹거리에 미안하다.

엄마가 편찮으신 후로 김장을 하지 않았다. 6남매가 모여 김장하는 날이면 늙으신 부모님은 좋아하셨지만, 김장 후유증으로 병이 나곤 하셨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고 그냥 쉬시라고 짜증을 내며 열무김치며, 오이지를 가지고 오는 날이 영원할 줄 알았다. 철마다 먹거리가 풍성할 줄 알았다.

홀로 되신 아버지, 홀로 농사짓는 일도 줄였다. 논은 오이하우스에 대여했고 고추 농사도 힘에 부친다. 이제 쌀이며, 고춧가루며, 김치를 사 먹어야 한다. 도시 생태계에선 당연한 것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매일 장을 보는 비용도 만만찮다.

불현듯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식량난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나 전염병 우려에 식품이 동 나는 뉴스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되고 자본시스템에 의해 자급자족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식량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괜한 기우는 아닌 듯싶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폄하된 인식마저 우습게 들리지 않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서울로 진학한 아들이 종일 집에 있다. 하루 한 끼 먹는 밥이라도 맛있게 해주고 싶다. 할머니가 계셨다면, 할머니의 밥상만으로도 아들의 저녁은 정말 따뜻하고 풍성했을 것이다.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감자조림, 고추장 돼지찌개, 껍데기무침, 무말랭이, 오이장아찌, 된장, 고추장, 열무김치가 너무 먹고 싶다. 엄마의 밥상이 너무 그리운 날이다.

돌아가신 후에 차려드리는 밥이 무슨 소용이겠는가마는 처음으로 아들이 차린 밥상에 엄마를 모시는 저녁, 꼭 말씀드려야겠다. 감사합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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