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유가 뭐던가?”

“우장규는 이미 우리 의중을 환하게 읽고 있었습니다.”

“허어참!”

최풍원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자 당황스러웠다. 최풍원도 마음 한편으로는 농민도회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부족할 농민도회에 돈으로 추파를 던지면 그들이 덥석 물 것이라고 확신하고 봉화수를 보냈던 것이다. 돈으로 농민들을 회유하여 느닷없이 튈 불똥을 피하고 관아와 농민들 사이를 오가며 양다리를 걸치고 돌아가는 추이를 살펴보려던 최풍원의 의도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최풍원은 처음부터 회합에 참여했던 차대규와 박노수를 시켜 농민도회의 의중을 알아보도록 했다.

“아무래도 행수어른이 직접 가보셔야 되겠습니다.”

농민도회소를 다녀온 두 사람이 말했다.

“도회소에선 북진여각을 어떻게 생각하구 있는가?”

“우 장군은 그런대로 호의를 가지고 있는 듯한데, 수뇌부들 몇몇은 관아 벼슬아치들보다도 장사꾼들을 더 질색으로 싫어합니다.”

“지금 도회소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모든 준비는 끝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 마을별로 책임자가 정해졌고, 그들을 중심으로 농민들을 동원해 도회를 열겠다는 통문이 이미 다 돌았습니다. 요새는 마을별로 조직을 점검하고 독려하는 데 지도부들이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차 객주가 보기에 도회소에서 그중 필요한 게 뭐같이 보이던가?”

“그야 먹을 것 하고 돈 아니겠습니까? 도회소를 밤낮으로 지키는 농민군만 해도 수십 명에 매일같이 고을 내 마을을 돌며 연락을 하는 농민군도 수십 명입니다. 그들이 하루 먹는 것만 해도 얼마이겠습니까?”

“그런데 왜 내 제의를 거부했지?”

“그야 도회소 입장도 있고, 길들이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입장? 길?”

“그렇지 않겠습니까. 주는 대로 아무거나 덥석덥석 받으면 거지 떼처럼 보일 터이고 사람들은 또 뭐라고 하겠습니까. 농민들 핑계로 돈만 걷어 들이다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농민들 목적이 관아의 학정을 해결하는 데 있지만, 결국 부자들이나 양반·지주들도 농민들을 못살게 한 패악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겁을 주고 자기들 도회에 동참을 하면 더욱 좋고 아니면 군자금으로 쓸 기부금을 내놓든지 알아서 기게 만들려는 속셈이 아니겠습니까?”

“그런겠구먼.”

“아침나절에 우 장군이 저를 은밀히 부르더니 대행수님을 뵙자고 하더이다.”

그제야 차대규가 우장규의 밀담을 최풍원에게 전했다.

“알았네. 내 직접 건너가 담판을 지어야겠네!”

최풍원은 자신이 직접 농민도회소의 우장규를 직접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을 처리하는 데도 다 격이 필요한 법인데 그들을 무시하고 봉화수를 보내 동냥 주듯 하려 한 자신이 경솔했다고 생각했다.

“대행수어른, 다시 그들을 찾아갈 때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차대규가 말했다.

“흐음.”

며칠 뒤, 최풍원이 봉화수를 대동하고 도화동 능강으로 다시 갔다. 최풍원이 도화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열 살 되던 해 도화동을 등진 후 처음이었다. 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오고 싶지 않은 고향이었다. 그만큼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아픔이 아직도 서리서리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 늙어 어쩔 수 없이 고향 도화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었다. 북진여각의 죽살이가 걸려 있는 중대한 문제가 걸려있었으니 아무리 아픈 기억이 있을지라도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전번에는 실례가 많았소이다. 내가 북진여각 최풍원이외다.”

최풍원이 먼저 둘러앉은 농민도회의 수뇌부들에게 인사를 차렸다.

“내가 농민대표 우장규외다.”

우장규는 마흔을 넘나들어 보이는 나이에 몸집은 보통이었지만 치켜진 눈꼬리와 앙다문 입이 무척이나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여러 가지로 바쁘실 터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리다. 북진여각에서 우리 고을민들을 위해 일하는 농민도회에 일만 냥을 드리리다.”

“일만 냥이요?”

우장규도 놀랐다. 일만 냥이면 도회에 천 명의 농민이 모인다 해도 각자에게 열 냥씩 나눠줄 수 있는 돈이었다. 열 냥이면 쌀 두 섬은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우장규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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