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당신들이 관청에 등소를 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소. 단 우리 농민들 이름은 등소장에 올리지 마슈.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그걸 빌미로 농민만 곤욕을 치를테니 말이오.”

우장규가 하익수의 절충안에 단서를 달고 받아들였다.

이차에 걸친 회합에서 계층 간의 팽팽한 대결이 절충안으로 해결을 보자 회의는 급진전했다.

“일단 도회 날짜와 장소를 정해야 그 다음 일이 될 것 같소.”

“도회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우리의 요구가 관아에 먹힐 테니 내달 삭일이 지난 첫 북진 장날을 기해 도회를 여는 것이 어떻겠소?”

“그거 좋은 생각이오!”

“날짜와 장소는 결정되었으니 다음에는 어떤 방법으로 마을마다 사람들에게 알리겠소?”

“대다수 농민들이 글을 모르니 각 마을 촌장들에게 통문을 보내고 그로 하여금 알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통문을 돌리는 것은 북진여각의 최풍원 대행수와 상의해서 도중회 조직을 이용해 보겠소.”

차대규 객주가 연락을 맡겠다며 나섰다.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운집시켜야 하니 좋은 방법들이 있으면 내놔 보시요.”

“농민들은 관아 눈치를 보느라 나오려 하지 않을 거요.”

“맞소. 가뜩이나 환곡에 장리쌀에 눈총을 받고 있을 터에 그들 눈밖에 나면 더 행패가 심해질텐데 쉽사리 나오려고 하지 않을거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의견들을 좀 내보시오!”

“도회에 나오면 환곡이나 장리쌀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어떻겠소?”

“그걸 믿겠소?”

“실질적으로 농민들에게 도움이 돼야 도회에 나올 것이 아니겠소?”

“일단 도회에 나오는 농민들에게는 곡물을 나눠준다는 글을 통문에 쓰고 그걸 적극적으로 알리면 좋을 것 같소.”

“그 곡물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이오?”

“당장 배고픈 농민들에게 곡물을 나눠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도회를 여는 취지를 더 적극적으로 알립시다. 무엇 때문에 이 도회를 열게 되었으며 농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소?”

“맞소! 그리고 이 도회가 모든 고을민을 위한 것이니 촌장에게 보내는 통문에 각 마을 별로 동원할 인원수를 정해주고 모자라는 마을에는 벌점을 매기면 어떻겠소?”

“그거 좋은 생각이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도회를 열려면 경비가 많이 날텐데 그건 어디서 충당한답니까?”

“양반·지주들이나 장마당 상인한테 기부를 받으면 어떨까 하오.”

“그들이 뭐가 아쉬워 기부금을 낸단 말이오?”

“괜히 도적으로 몰려 치도곤이나 당하기 십상이지.”

“이렇게 앉아서 백날 왈가왈부해야 해결될 것은 없소! 그러니 일단 통문을 잘 써서 고을민들이 모일 수 있게 하는 것이 급선무요. 그 다음에 생기는 일은 또 그때 논의합시다.”

“좋습니다!”

“일단 통문부터 작성합시다!”

그렇게 우장규를 비롯한 농민대표들은 통문을 만들고, 유겸호를 중심으로 사족들은 청풍관아에 올릴 등소문을 작성했다. 그리고 각자 맡은 소임을 철저하게 실행할 것을 다짐하고 모든 연락은 일차 회합을 가졌던 능강 우장규의 집으로 정했다.

광아리 천만이네 집에서의 회합이 끝나자 차대규와 박노수 객주는 서둘러 북진여각으로 최풍원 행수를 찾아갔다.

“대행수 어른, 아무래도 변고가 생길 듯합니다.”

“무신 변고?”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려 합니다.”

“그럼 난리를 일으킨단 말인가?”

“일단 도회를 열고 관아에 등소도 올리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지만. 요구 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틀림없이 봉기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어디서 도회를 연다는 말인가?”

“다음 장날 북진에서 연답니다.”

“여기서?”

“그렇습니다, 대행수!”

“그렇다면 우리 여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게 아닌가?”

“그렇습니다.”

“우리도 미리 방비를 해야하겠구먼.”

역시 최풍원은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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