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며칠 전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회의에 간신히 정시에 도착한 일이 있었다. 안내를 받아 빈자리에 앉았고, 회의가 끝날 무렵 옆에 앉은 분과 인사를 나누려 명함을 건넸다. 그랬더니 그분이 필자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아, 그런 것 같네요”라고 거짓 대답을 하면서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는데,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는 필자의 사진과 연락처를 보여주셨다. 그러면서 어디 어디에서 대청댐 관련한 회의였다는 말씀으로 필자의 기억력을 도와주셨다. 필자는 그제야 그 회의가 생각났지만, 그분을 만났던 것은 여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필자가 아내에게 듣는 많은 관심의 표현(보통은 ‘잔소리’라고 부른다) 중 하나는 “당신은 왜 이리 기억을 못해요? 그런 머리(아마 기억력일 것이다)로 어떻게 박사학위를 받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이다. 박사학위는 머리가 좋지 않아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내가 몰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기분이 좋은 말은 아니었다. TV에서 한참 재미있는 영화를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그거 전에 영화관에서 봤었잖아요”, “정말? 근데 왜 기억이 안 나지?”, “어휴...”의 대화가 반복되곤 한다.

아내의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동안 필자는 이런 기억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회의나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예의 바르게 인사하지만, 혹시나 만났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모르는 척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나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기억력을 늘리려고 애를 써 봤으나, 이 기억하는 능력은 달리기처럼 노력한다고 향상되지는 않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명절이면 반복적으로 방영하는 영화들을 매번 긴장하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봤었다는 것을 기억한다고 해도 내용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한두 번 만난 사람에게 불필요한 선입견이 생기지도 않는다. 길을 헤매는 대신에 뜻밖의 장소를 경험하기도 한다. 웬만한 식당의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새롭고 맛있다.

대학 시절 후배가 “선배는 머리가 돌 같다. 뭐든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근데 뭐, 한번 새기면 지워지지 않는 장점도 있다”라고 웃으며 한 말은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기억력 문제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 같다. 어쩌면 초등학교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그 기억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지우려고 발버둥 쳤던 것이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이 ‘지우개 능력’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생각남으로써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생존 방식이었던 것 같다. 잊혀질 수 없는 것을 지우려다 지우개 능력이 발달 된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 망각이 없었더라면, 필자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의 필자에게는 망각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제는 어린 시절 사건을 굳이 지우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마음이 건강해졌지만, 지우개 능력은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사건들은 후배의 말처럼 돌 위에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고, 앙갚음의 마음으로 남아서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이조차 망각하면 좋겠으련만, 그렇지 않다면 회개와 겸손의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십자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우리에게 망각은 꼭 필요한 감사한 기능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