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도화동 능강마을에서 항쟁을 모의하다

[충청매일]

② 도화동 능강마을에서 항쟁을 모의하다

공이동에서 있었던 농민들의 산호 사건은 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청풍 관내로 퍼졌다. 그러나 농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곳이 공이동이었을 뿐 관아를 뒤집어엎고 양반·지주들의 곳간에 불을 질러 속에 든 응어리를 풀고 싶어 하는 농민들은 청풍관아 어느 마을이고 마찬가지였다.

북진여각에서 강을 거슬러 동쪽으로 두서너 마장쯤 올라가면 도화동이 있었다. 어사 박문수가 태어난 곳이자 최풍원의 고향이기도 했다. 최풍원은 아버지의 탐학으로 집안이 풍비박산되어 도화동을 떠난 후 지척에 살면서도 이제껏 단 한 번도 그곳을 찾지 않았다. 어린 시절 겪었던 가슴 아픈 기억들을 다시는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도화동 능강 마을의 우장규의 집에서는 인근 농민들과 몰락한 사족들이 모여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청풍 향시의 장사꾼과 북진여각 도중회의 낯익은 객주도 혹간 눈에 띄었다.

“당신들이 진정 농민의 고통을 안다면 등소하는 방법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오! 작금의 농민들 형편은 시퍼런 작두날 끝에 서 있소. 그런데 언제 등소를 할 시간이 있단 말이오. 관청에 등소를 올리고 그 답을 기다리는 사이 모든 농민들은 굶어죽고 말 것이오. 당신들은 먹을 것이라도 있어 그렇게 느긋할지 모르겠지만 일 년이 지나도록 죽 한 끼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는 농민들은 그럴 틈이 없소! 우리에게는 아침 해 뜨는 것이 저승사자보다도 무섭소. 또 등소를 한다고 관에서 농민들 얘기를 들어주는 것 보았소? 아마 코웃음을 치고 등소장은 보지도 않고 처박아둘 것이 뻔한 일이오. 그러니 답도 오지지 않을 뿐더러 종이 값과 먹 값만 날리고 말 것이오. 울어야 마른 젖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소. 이젠 농민들도 괭이 들고 낫 치켜들고 일어나 봉기하는 것만이 저들을 정신 차리게 하고 한 사람의 농민이라도 살릴 수 있는 길이오!”

농민대표 겸 회합에 참석한 우장규가 소리 높여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다.

“우린 그런 불법적인 봉기에는 찬동할 수 없소. 그건 모반하는 것이나 다름없소. 절대 동의할 수 없소!”

사족을 대표해서 나온 유겸호 또한 단호했다.

“임금이 백성을 자식처럼 돌보지 않는데 우리가 임금을 공경할 이유가 뭐요? 아무리 하늘이라도 백성을 돌보지 않고 해코지하는 하늘은 깨버려야 하오!”

우장규는 관아나 조정에 농민들의 형편을 알리는 등소장을 올릴 필요도 없이 곧바로 봉기할 것을 주장했다.

“그건 너무나 위험천만한 생각이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다 절차가 있는 법이오. 그걸 지키지 않으면 이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도 혼란에 빠질 것이오!”

절차를 주장하는 유겸호도 물러서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고 절차란 말이요? 저들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왜 백성들한테만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이오. 그렇게 법을 지켰다면 농민들 살림이 이 꼬라지겠소? 이젠 농민들도 속지 말고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들고 일어나야 그들도 농민들 사정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란 말이오!”

“이제껏 단 한 번도 백성들 항쟁이 성공한 적이 있소? 아까운 목숨들만 버릴 뿐이오. 그러니 일단 우리 고을민들의 뜻을 적어 관아에 알리고 그 답을 기다려 봅시다. 그런 연후에 그 결과에 따라 또 방법을 찾아보면 되지 않겠소?”

“구차한 목숨이 그렇게도 아깝소? 죽는 게 그렇게도 겁나시오? 당신이 지금 고을 백성들의 사정을 알고 그들의 고통을 안다면 관의 처분만 기다리자는 말은 하지 못할 거요! 양반이 뭐 하는 사람이고 사족이 고을민을 위해 뭘 하는 사람이오? 불쌍한 고을민들의 고충을 듣고 그것을 관에 알려 고치는 것이 당신들 소임 아니오? 지금처럼 백성들 살림살이가 핍박해진 것은 모두 당신 같은 사족들의 안일한 태도 탓이오! 당장 일어나 봉기를 일으켜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하오!”

우장규가 유겸호을 인신공격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 회합에서 손을 뗄 것이오!”

사족대표 유겸호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직도 사족들은 농민들이 처한 현실을 모르고 있소! 자신들은 농민들처럼 배창시가 끊어질 정도로 배를 곯아보지 않았으니 어째 그 고통을 알 수가 있겠소. 그러니 자기들 땅이나 지키고 될 수 있으면 평지풍파 없이 현 상태나 유지하려고 애면글면이지. 괜히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이지 저런 것들하고 무슨 봉기를 한단 말이오!”

우장규가 한심하다는 듯 등을 돌려 나가는 유겸호를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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