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청탁이 행해지지 않고 뇌물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집안을 바로잡았다 할 수 있다.”

청렴한 공직자의 상징으로 꼽히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문구이다. 외부기관으로 교육을 갔을 때 교육장 복도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인상 깊어 사진을 찍고 한참을 읽어봤던 기억이 난다.

요즘 시대에 집안을 바로잡으라거나 가문을 지키라는 말을 한다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집안의 명예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지금은 집안보다는 개개인의 삶과 행복이 더 중요한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집안’이라는 단어 대신 ‘이름’으로 고쳐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금품 수수와 비리를 저질러 징계를 받거나 불명예스럽게 면직 처리된 직원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그중에는 재직 중에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였던 사람도 있고, 머리가 좋고 일을 잘 했다는 사람도 있고, 쾌걸로 평가받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업무 해결력이나 역량이 뛰어나도 그를 두고 좋은 공직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의 이름 뒤엔 끝내 비위 공직자, ‘○○’했던 공무원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뿐이다.

날 때부터 악한 사람은 없듯 처음부터 청렴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처음 시작할 때는 공직자로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떳떳한 마음으로 사회에 공헌하리라 굳게 다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곧 만나게 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청렴 대신 부패의 길을 택하게 되면 당장의 눈앞의 이익은 취할지언정 결국 자신에게 족쇄를 채우고 오명을 뒤집어쓸 뿐이다. 어디선가 내 이름이 거론됐을 때 비리로 얼룩진 부패한 공무원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면 나의 이름과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크나큰 모독이 될 것이다.

청탁과 접대를 받는 것이 만연하고 그것도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2015년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의 제정과 시민 의식의 변화로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몇몇 공직자들의 불미스러운 사건사고와 부정부패를 마주할 때면 아직도 우리 공직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이름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는 바로 나에게 달렸다. 자기 자신을 청탁과 뇌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그것이 내 ‘이름’을 지키는 것이다. 나의 주머니와 손이 가벼워지면 나의 몸과 마음 또한 가벼워진다. 공명정대한 마음과 청렴의 실천으로 나의 이름을 바로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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