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카톡 소리에 눈을 떴다. 이미 떠오른 햇살이 차가운 눈길로 나를 들여다본다. 휴대폰에 박힌 빨간 숫자들을 하나하나 지우다가 어느새 그 세상 속으로 빨려들고 만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다 다시 돌아눕고 기지개 한 번 켜고 또 돌아눕는다. 그렇게 뭉그적거리다 그예 늦잠을 자고 말았다. 늘 몸이 찌뿌듯한 건 순전히 날씨 탓이라며 나의 게으름을 슬그머니 뒤로 숨긴다.

한낮에도 영하라니 추위에 약한 내겐 맞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너무 추워서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마음마저 얼어붙었다. 규칙적으로 하겠다던 운동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날이 풀리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봄이 되어야 뭔가 힘차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새해를 맞은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암울했던 2020년을 작대기로 떠밀어내듯 보내고 연말을 자축했다. 새해맞이 인사도 숱하게 주고받았다.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고 늘 행운이 함께 하길 서로 빌어주었다. 소원하는 좋은 말들은 다 들어보았다. SNS로라도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으니 코로나로 얼어붙은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그에 힘입어 야심차게 다짐도 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없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그저 그런 날들을 새끼줄 꼬듯이 줄줄이 엮는 중이다. 마치 아무 생각도 없이 사는 사람 같다.

새해는 왜 한겨울에 시작되는 걸까. 봄부터 한 해가 시작되면 얼마나 새뜻하게 출발할까.

일 년 중 마지막 절기인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 이쯤에 있다. 아직은 섣달인 것이다. 대한이 놀러 갔다 얼어 죽었다는 소한 추위가 이번에도 대단했다. 게다가 폭설까지 내려 겨울을 한껏 부려놓고 갔다. 아마 묵은 때를 모두 묻고 새해를 맞으라는 뜻이 아닐까?

제주에서는 예로부터 대한과 입춘 사이 약 일주일 동안에는 새로 이사를 하거나 집수리를 해도 손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를 하는 기간이란 뜻일 게다. 그러고 보면 아직 진짜 새해는 오지 않았다. 달력은 새로 바뀌었지만 힘찬 첫걸음은 아직 내딛지 못하는 어정쩡한 요즘이다. 물론, 이미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매년 비슷했다.

어렸을 때는 해가 바뀌어도 아쉬움이 없었다. 12월만 되어도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하지만 1월이 되면 또다시 설날이 기다리고 있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 참 더디게 느껴졌다. 지금은 어떤가? 누가 나이를 물어오면 아직은 아니라고 그예 부정하려 한다. 하루가 아쉽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는 말처럼 이제 설을 쇠고 나야 진정 한 해가 바뀌는 거다. 나무의 뿌리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요즘이다.

서둘러 무엇을 이루어내기보다 한해를 잘 갈무리하며 새해를 준비해야 하는 때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고 하니 이제 봄으로 가는 길이 가까이 오고 있다. 머지않아 온 대지에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몰고 새해가 오는 것이다. 묵은해를 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요즘은 13월이다. 옛사람들의 지혜 덕에 13월은 내게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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