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고을민들은 땟거리가 없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는 지경에 고을 수령인 자가 관내에서 그마만한 돈을 거둬들였다면 조관재 부사가 어느 정도로 착취를 했는지 알만했다. 청전 팔만 냥을 녹여서 제대로 된 상평통보를 만들면 이삼만 냥은 만들 수 있는 재료의 양이었다. 그러나 개인이 사사로이 돈을 만들다 발각되면 목숨을 내놓아야만 했다.

“사또, 그 청전을 제게 주시면 상평통보 오만 냥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요.”

“…….”

조관재 부사가 대답 대신 무언가 골몰하게 생각을 했다. 위험 부담이 있기는 했지만 조관재 부사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었다. 더구나 녹여 농기구나 만들까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쇳조각에 불과한 청전을 살려 돈으로 만들어 준다니 당장 목에 칼이 들어오는 일이 아닌 다음에야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혹여 발각이 되더라도 최풍원에게 모두 덮어씌우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고을 수령으로서 관리 책임을 물어 문책 정도 받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파직이 된다 하더라도 벼슬을 사느라 쓴 돈의 십수 배를 이미 거둬들인 후였다. 더구나 쓸모도 없는 청전을 녹여 오만 냥을 만들어 준다니 파직이 되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관아 주전소가 버거우니 할당받은 충자전 중에서 관전 십만 냥을 최 행수에게 넘겨야겠다고 호조 감독관에게 말해 두겠네. 십만 냥에 해당하는 구리는 주전 기술자들과 상의해서 자네가 해결하게!”

“사또, 그리고 저에게도 공임을 좀…….”

“내게 관전 십만 냥과 청전으로 만든 오만 냥만 납품하면 되고 거기에 소요되는 경비는 자네가 더 주조하게!”

조 부사가 최풍원에게 사주전을 찍어도 좋다는 언지를 주었다.

“고맙습니다요, 사또!”

최풍원이 조 부사에게 허리를 굽혀 감사의 뜻을 전했다.

“대신 조건이 있네.”

“뭐든지 말씀하시지요?”

“내가 자네에게 주조권을 주었으니 자네도 내게 뭐라도 내놓아야만 하지 않겠나?”

“사또께서 뭘 원하시는지요?”

“나도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일이니 그만한 대가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씀하시지요?”

“북진나루에 있는 자네 배를 내게 주게.”

“몇 척이나요?”

“모두 다!”

“열 척을 다요!”

“그렇다네!”

조 부사는 맡겨놓은 제 물건을 찾아가는 사람처럼 당연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요.”

최풍원은 억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북진여각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재산이라 애착이 가는 배들이었지만 지금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마련해 한양의 탄호대감에게 올려 보내야 했다. 어차피 탄호대감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북진여각을 비롯한 최풍원 소유의 모든 재산이 날아갈 판이었다. 그러니 억울하더라도 하는 수 없었다. 조 부사의 심기를 맞춰주고 주전권을 따내야 했다. 그것만이 북진여각과 삼개상전을 보전할 유일한 돌파구였다.

북진여각으로 돌아온 최풍원은 대장장이 천승세 노인을 불렀다. 천 노인은 쇠를 떡 주무르듯 하는 대장장이였다. 평생 풀무질을 하며 살아온 천 노인은 어떤 쇠붙이고 만지기만 하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냈다.

“어르신, 엽전을 좀 만들어 주시오!”

“엽전을 관아에서 만들지 않고 어째 최 행수가 만든다오?”

천 노인이 엽전이라는 말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르신도 뭘 그리 놀라십니까. 이번에 관아로부터 엽전 삼십만 냥을 만들도록 허락이 떨어졌답니다.”

최풍원이 대장장이 천 노인을 속였다.

그날부터 북진여각 별채 안에서는 상평통보를 만들기 위해 천 노인이 동몽회원들을 데리고 주전소를 차리고 엽전 주조에 들어갔다. 문제는 동전을 만드는 데 들어갈 재료였다. 청풍관아에서 들어올 구리와 주석은 관전 십만 냥 분과 청전을 녹여 얻을 수 있는 삼만냥 정도가 전부였다. 제대로 된 상평통보 삼십만 냥을 만들려면 원 재료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어르신, 이번에 만드는 충자전은 한양 상평청에서 만든 엽전과 모양·색깔·무게까지 똑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구리와 주석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도 꼭 만들어야 합니다!”

최풍원이 한양 상평청에서 만든 상평통보를 천 노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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