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예. 사고 소식을 듣고 제가 다녀왔습니다. 저를 보고 탄호대감이 당장 자기 앞에 오만 냥을 갖다 놓으라며 노발대발했습니다. 경상들 물산도 물산이지만 탄호대감 돈이 더 큰 문제입니다.”

봉화수가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막막하기는 최풍원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돈을 구할 수는 없었다.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봉화수 이야기를 듣고 최풍원은 곧바로 탄호 조준걸 대감을 찾아갔다. 어떻게라도 사정을 해볼 생각이었다.

“네가 내 돈을 잃어버린 장사치더냐?”

“예.”

“남의 재물을 축나게 했으니 어떻게 하겠느냐?”

“갚겠습니다요.”

“어떻게?”

“조금만 말미를 주시면 변통을 해서라도 갚겠습니다.”

“네 이놈! 남의 피 같은 돈을 훔치고 말미를 달라니, 네놈이 혼줄이 나봐야 정녕 바른 소리를 하겠느냐?”

“훔치다니 무슨 말씀이옵니까?”

“그렇지 않느냐? 강화에 있는 내 마름 얘기로는 분명 엽전 오만 냥을 담은 돈궤를 배에 실었다고 하는 데, 배에서 잃어버렸다면 배 주인이 훔치지 않고 누가 훔쳤다는 말이냐?”

“그건 수적을 만나…….”

“수적을 만났다는 것도 네놈들 얘기지, 돈이 탐나 네놈들끼리 짜고 벌인 일인지 어떻게 알겠느냐?”

탄호 조 대감이 억지소리를 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리이까? 더구나 저 같은 일개 장사치가 대감의 돈에 손을 댈 생각을 하겠사옵니까.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옵니다!”

“여러 소리 구구하게 할 것 없다. 당장 내 돈 오만 냥을 가지고 오너라!”

어떤 소리도 탄호 대감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대감, 제 목을 자른다 한들 어찌 그리 큰돈을 당장 대령할 수 있겠사옵니까? 제발 소인을 불쌍히 여겨 말미로 선처를 바라옵니다.”

최풍원이 통사정을 했다.

“네놈이 남의 돈을 착복하고도 배짱을 부린다?”

“배짱을 부리는 것이 아니오라 말미를 주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한 기일 내에 갚겠사옵니다.”

최풍원이 읍소를 했다.

“남의 돈을 훔치고도 네놈같이 막무가내인 놈은 혼줄이 나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탄호대감이 겁박을 했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최풍원도 버텼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지나 아느냐? 대비마마 탄신 축하연에 쓸 돈이니라! 그 돈을 네놈이 훔쳐갔으니 모가지가 열 개 백 개라도 남아나지 못하리라!”

탄호대감은 대비를 거론하며 최풍원을 닦달했다.

탄호대감이 말하는 대비마마는 순조의 세자비였던 조 대비를 말하는 것이었다. 조 대비는 지금의 고종을 왕좌에 앉힌 실세 중 실세였다. 탄호대감이 대비의 생일을 맞아 거액의 축하금을 바친다는 것은 아직도 그가 세도를 부리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대비의 이름을 팔음으로써 자신의 건재함을 상대에게 과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세도의 건재함은 곧 재물과 직결되는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탄호대감이 최풍원에게 조 대비를 운운하는 것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여 남의 재산을 우려내기 위한 술수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겁박을 해도 최풍원의 형편으로는 지금 당장 오만 냥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대감, 제 목을 잘라도 당장 돈 나올 구멍은 없사옵니다. 말미를 주시든지 아니면 오만 냥에 제 목을 치시오!”

“저렇게 어리석은 놈을 보았나. 내가 네놈 목을 쳐 무엇 하겠느냐? 네놈이 당장 돈을 내놓을 수 없다면 다른 재산이라도 담보를 내놓고 말미를 달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느냐? 남의 돈을 잃어버리고 느닷없이 찾아와 입으로만 말미를 달라고 막무가내로 버티면 내가 어찌 널 믿고 말미를 줄 수 있겠느냐?”

최풍원이 이판사판으로 나오자 탄호 대감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결국 최풍원은 북진여각, 삼개상전, 사선 스무 척 등 전 재산을 담보로 원금 오만 냥을 빌린 것으로 하고 그 돈에 대한 이자까지 합쳐 지불하겠다는 문서를 작성하고 탄호대감의 대문을 나설 수 있었다. 일단 오만 냥을 준비할 수 있는 말미는 생겼지만 문제는 그 큰돈을 마련할 방도가 묘연했다. 그렇다고 이 나라 실세인 탄호 대감의 돈을 갚지 않고는 살아날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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