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활터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단 제도입니다. 활터에도 단이 있습니다. 초단부터 9단까지 있고, 5단부터 명궁으로 호칭합니다. 활쏘기에서는 화살 하나를 시(矢)라는 단위로 씁니다. 5시를 1순(巡)이라고 합니다. 한 번에 5시를 허리춤에 차고서 쏘는데, 함께 선 사람들이 차례대로 1시씩 쏘아서 5차례를 거듭하여 1순을 마칩니다. 양궁 단체전은 3발을 연거푸 쏘고 다음 선수가 이어받는데, 국궁은 5시를 하나씩 교대로 쏘아서, 같이 나아가고 같이 물러납니다. 단을 올라가려면 모두 9순(45시)을 쏴야 합니다. 하루에 9순을 쏴서 25시를 1단, 27시를 2단, 이렇게 올라가서 31시가 5단, 그 위로는 2시씩 차이를 두었습니다. 이것이 약간 조정된 것은 2019년입니다. 그렇지만 큰 뼈대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승단의 조건이 오직 이것뿐이라는 점입니다. 원래 단 제도는 일본의 유도에서 1930년대에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실력과 경력에 따라서 단을 부여하여 쉽게 그 사람의 경력과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 것이죠. 그 후 일본의 모든 무술로 퍼졌고, 그것이 한국과 중국으로도 퍼져 동양의 모든 무술에서는 이것을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단은 무술의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아가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통 활쏘기에서도 이것을 도입하여 적용한 것입니다.

모든 무술의 단 심사에서는 반드시 상식에 관한 시험을 봅니다. 단 심사는 고단으로 올라갈수록 심사의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몸으로 하는 기술은 기본이고, 거기에 무술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이나 철학까지 묻습니다. 고단자가 무식하면 안 된다는 것은, 그 무술의 미래를 위해서 정말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궁의 단 심사는 오직 과녁 맞히기 하나로 끝입니다. 5단부터는 ‘명궁’이라는 호칭이 따라붙는데, 활에 대한 상식을 전혀 묻지 않음으로써 활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무지한 명궁들을 쏟아냅니다. 문제는 이런 명궁들이 각 활터에서 왕 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과녁 맞히는 기술로 명궁이 된 뒤에, 활터의 전통에 대해서도 제 생각이 옳다고 강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활터는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격변을 겪는 중입니다. 앞선 글들에서 근래 20년 상간에 활터의 변화가 많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 변화를 이끄는 주역이 바로 명궁들입니다.(“활쏘기의 어제와 오늘”)

명궁은, 옛날 같으면 감히 붙일 수 없는 명칭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명궁이 호칭으로 불립니다. 김 명궁님, 이 명궁님 하는 식이죠. 이렇게 존칭으로 자리 잡자, 원래 있던 존칭이 비칭으로 격하되는 중입니다. 활터에서 원래 남을 존중하여 불러주던 호칭은 ‘접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명궁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접장이라고 불리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걸 정당화하기 위하여 ‘접장’이 옛날 보부상들이나 쓰던 말이니 쓰지 말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분도 나타났습니다. 덕분에 청주의 한 활터에서는 “나를 접장으로 부르지 말아 달라.”고 하는 촌극까지 일어났습니다. 기껏 존중해주니까 나를 존중해주지 말아 달라고 핀잔주는 것과 똑같은 일입니다.

단 제도가 지금처럼 운영된다면 활터의 미래에 가장 큰 먹구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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