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풍원은 봉화수 이야기를 들으며 급박했던 상황이 눈앞에 환하게 그려졌다. 거친 바다위에서 강선과 해선은 거북이와 토끼 경주를 보는 것 같았을 것이다. 바닷배인 해선은 바닥이 칼날처럼 뾰족하게 되어 있어 거친 파도를 가르며 빠르게 항해할 수 있지만, 내륙의 강을 오가는 강배는 뱃바닥이 평평해 파고가 심한 바다에서는 맥을 추지 못할 것이 뻔했다. 아마도 해선은 봉화수네 강선을 젖먹이 다루듯 했을 것이었다. 더구나 거친 바다에서 막살이를 해온 흉악한 수적들을 강에서 노나 저으며 살아왔던 순한 뱃꾼들이 상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상한 사람은 없더냐?”

“몇몇 상하기는 했지만 더 큰 불상사는 없었고, 다행이도 실려 있던 것들만 털어 사라졌다 합니다.”

“다행이로구나. 선적했던 물산들은 무엇이었더냐?”

“용산과 삼개 경상들이 부탁한 수산물과 곡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 수적은 잡았다던가?”

“관아에서 모든 나루를 막고 검문을 한다는 데 놈들의 행방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가 봅니다.”

“큰일이구먼!”

가뜩이나 북진여각도 어려운 형편에 삼개상전까지 일이 터졌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최풍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경상들과는 어떻게 얘기가 되어가고 있는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따금 벌어지는 일인지라 경상들은 우리 걱정을 하며 아직은 재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로구나.”

“그런데…… 장인어른?”

봉화수가 최풍원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무신 일이 또 있는가?”

“예.”

봉화수가 풀이 죽어 대답했다.

“무슨?”

“장인어른, 경상들 물산보다도 더 큰일이 터졌습니다."

“남의 물건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큰일이 뭔가?”

“…….”

“뭔데 그러는가? 어서 말해보게!”

차마 봉화수가 입을 열지 못하자 최풍원이 재촉했다.

“가회동 탄호 대감의 오만 냥입니다.”

“탄호 대감! 오만 냥?”

“예.”

최풍원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최풍원은 어떻게 된 일인지 연유도 묻지 않은 채 돈의 액수에 놀랐다. 북진여각이 한창 번창할 때라면 그 정도의 돈은 얼마든지 융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북진여각의 형편에서 오만 냥이라는 돈은 목줄을 죄는 오라와도 같았다. 목줄을 죄는 정도가 아니었다. 사선을 짓고 아직도 갚지 못해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빚이 십만 냥이었다. 거기에 다시 오만 냥의 빚이 더해진다면 북진여각은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스스로 자멸할 것이었다.

더구나 탄호대감의 돈이라면 말미를 달라며 미룰 수도 없었다. 탄호 대감은 세도정치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조준걸 대감을 이르는 말이었다. 탄호 조 대감은 젊어서부터 외직을 돌며 고을민들을 다스리는 일은 잘했지만 지나칠 정도로 물욕이 심했다. 또한 출세욕도 대단하여 충청도관찰사 시절에는 돈궤를 당나귀로 실어 나르며 세도가들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렇게 대궐의 권력 있는 자들과 교분을 나누며 섬기기를 잘해 대감 벼슬까지 올랐다. 그래도 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재물과 이익을 일삼으니 항간에서는 재물을 탐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가리켜 ‘탄호 대감’이라고 하였다. 워낙에 세상 평판이 좋지 않자 새 임금이 들어서며 권력의 중심에서는 밀려났지만, 아직도 관리 서넛의 목은 좌지우지할 정도로 권세는 남아 있었다.

“오만 냥이나 되는 그런 큰돈이 왜 배에 실려 있었단 말이냐?

“탄호 대감이 강화도에서 소작료로 거둔 돈을 부탁받아 싣고 오던 중이었습니다.”

“그 돈을 우리 배에 실었단 말이냐?”

“예.”

“그런데?”

“뱃꾼들 얘기로는 강화도를 떠나 한강 하구로 들어오던 중 수적들이 갑자기 나타나 칼을 들이대고 노략질을 하는 데 어찌할 방도가 없었답니다. 뱃꾼들 중 몇몇은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반항을 하다 수적들에게 난타를 당해 좀 상했답니다.”

“탄호대감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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