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젠 나도 늙어 장마당 돌아가는 형편도 읽지 못하는 구시대 장사꾼일 뿐이다. 앞으로는 자네가 주축이 되어 장시를 이끌어나가야 할걸세.”

달포 전 삼개에 내려왔던 최풍원은 처음으로 봉화수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장인어른,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한참 더 일하실 연세이십니다!”

봉화수가 당치도 않다는 듯 서둘러 위안의 말을 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있다더냐? 늙으면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떠나는 것이 세상 이치여. 그걸 모르고 아둥바둥 붙잡아보려고 용쓰는 것도 노욕이고 망녕이여. 떠날 때가 되면 떠나야지!”

“아직은 더 저희 뒷배를 봐주셔야지요.”

“젊은 사람들이 더 잘하는 데 늙은이들이 도와줄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닙니다. 아직은 장인어른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래, 한양에서 장사하며 제일 힘든 일은 무엇인가?”

“텃세입니다. 경상들은 자기들끼리 상계를 모아 계원들끼리만 서로 일을 분배하기 때문에 타관에서 온 저 같은 사람은 배겨나기가 매우 힘듭니다.”

“그거야 한양만 그렇겠는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있는 법이니 뿌리를 내릴 때까지는 견디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있겠는가.”

“저도 저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가까워지기 위해 각별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발톱을 숨기고 저들 식미를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 배는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가?”

“경상들이 시키는 짐들을 옮겨주고 있지만 위험부담이 매우 큽니다.”

“위험이 크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강선을 가지고 강화도 연안을 다녀오려면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바다는 해선이 다녀야지 강선이 될 말인가?”

북진에서 건조한 사선 스무 척은 모두 강선이었다. 배는 강선과 해선이 전혀 달랐다. 강선은 물이 얕은 뭍에서도 다닐 수 있도록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으로 만들어졌지만 해선은 깊은 물이나 거친 파도를 뚫고 바다를 다니는 배라 밑바닥이 뾰족했다. 따라서 해선은 강선에 비해 물의 마찰력을 덜 받았기에 강선에 비해 속도도 매우 빨랐다. 게다가 강선은 주로 흐르는 물을 타고 내려오는 배라 배를 모는 사람들의 힘도 덜 들었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해선은 변화무쌍한 조류를 따라다니며 수시로 변화는 날씨에 대처해야 했기에 뱃꾼들도 많은 경험과 기술이 필요했다. 봉화수는 배와 뱃꾼 등 모두 열악한 조건에서 배를 운행하다 보니 바다를 가로질러 직접 뭍으로 항해할 수가 없었다. 봉화수가 강선을 가지고 바다를 다닐 수 있는 방법은 그런대로 조류가 심하지 않고 풍랑도 잔잔한 해안선을 따라 먼 물길을 돌아 바다로 길게 뻗은 곶을 찾아야 했다. 당연히 해선에 비해 운항 거리도 길었고 뱃꾼들도 몇 배나 힘들었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짐을 옮기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 별로 이득이 없었다.

“그렇다고 바다 물산이 대부분인 삼개나루에서 수산물을 옮기지 않으면 일이 없으니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 참 진퇴양난이로구나.”

최풍원으로서도 봉화수가 겪고 있는 고충을 해결할 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장인어른 심려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의 곤경을 이겨내고 경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겁니다. 다 나아가 종당에는 경상들을 부리게 될 날이 오도록 제가 만들 것입니다!”

봉화수가 결의에 찬 표정을 지으며 최풍원을 안심시켰다. 최풍원의 안색도 훨씬 밝아졌다.

“화수야, 북진여각의 명맥은 자네에게 달려있다.”

최풍원이 봉화수의 손을 잡으며 당부를 했다.

한양의 삼개나루에 내려갔던 최풍원이 봉화수를 만나고 온 것이 반삭 전쯤이었다. 

“대행수 어른! 화수 형님이 수적을 만나 물산을 몽땅 뺐겼답니다!”

그런데 오슬이가 한양의 삼개상전에서 급보를 가지고 달려왔다.

최풍원이 서둘러 한양으로 내려갔다.

“어떻게 된 일인가?”

“강화도 연변에서 수적을 만났습니다.”

“그래 얼마나 털렸는가?”

“배 세 척이 모두 털렸습니다.”

“세 척이 모두 한꺼번에?”

“예. 뱃꾼들 이야기를 들으니 수적들 해선이 어찌나 빠른지 우리 강선은 느려서 도망쳐야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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