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봉화수 선단, 수적을 만나 거덜 나다

[충청매일]

③ 봉화수 선단, 수적을 만나 거덜 나다

청풍에서 고을민들에게 나눠줄 구휼미를 선적한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궐에서 조사관이 파송되었다. 그러나 파송된 관리는 현장은 형식적으로 둘러보고 조관재 청풍부사가 베푸는 향응만 즐기다 한양으로 돌아갔다. 애초부터 관리는 조사할 생각조차 없었다. 괜히 파헤쳐봐야 자신의 일신상에 좋을 것이 없었다. 나라의 구휼미를 통째로 삼키려면 시골 고을 수령의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반드시 그 뒤에는 권력을 지닌 세도가가 있었다. 괜히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속속들이 조사를 하다 그런 높으신 양반들의 심기라도 건드리는 날이면 출세길에 지장이 있을 터였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었다. 그저 조사하는 척 흉내만 내고 고을 부사가 주는 약채나 챙기는 것이 만사형통하는 길이었다. 그러니 지방 수령들과 아전들의 패악은 점점 심해졌고 죽어나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뿐이었다.

최풍원이 청풍부사 조관재와 공모하여 고을민들의 허기를 달랠 구휼미를 착복했지만, 현재 북진여각이 직면한 난관을 타개하기에는 빙산에 일각이었다. 그런 일시적인 방편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고패 시키는 대가로 일 천석을 주겠다던 조 부사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구휼미를 고패로 위장한 쌀을 싣고 한양의 용산나루에 당도한 최풍원의 배는 구린 땡전 한 푼 받지 못했다. 용산에서 쌀을 넘겨받은 경상은 쌀값은 대궐 조 대감에게 직접 가져오라는 전갈을 받았다며 하역한 쌀만 가지고 갔다. 청풍의 조 부사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러나 모를 리 없었다. 이후로도 조 부사는 조 대감으로부터 달리 기별 받은 것이 없다며 차일피일 기일을 미루거나 최풍원을 피했다. 그 속셈은 뻔했다. 일이 모두 끝나자 아까워 대가를 지불할 생각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렇다고 불법을 저지른 최풍원이 그들을 고변할 수도 없었다. 설사 고변을 한다 해도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은 최풍원 뿐이었다.

최풍원은 다급해졌다. 우선 당장 시급하게 닥친 막대한 빚을 갚으려면 예전의 상권을 되살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북진여각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과거 최풍원이 해왔던, 물건을 받아다 산지물건과 교환하는 식의 바꿈이 장사는 구태한 상술이라 이젠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제는 산지까지 찾아가 물산을 구할 필요도 없었다. 한양 곳곳에 생겨난 큰 장마당에만 가면 팔도에서 모인 각종 특산물과 중국에서 들어온 갖가지 진귀한 물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또 공방에서 생산된 생활필수품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상인들은 그런 물건들을 싣고 팔도를 돌며 시세가 좋은 고을의 장마당을 찾아다니며 풀어 일시에 거금을 벌어들였다. 최풍원 시대는 물산의 양이 곧 부의 척도였지만, 이제는 팔도 시세를 남보다 빨리 알아내는 정보가 돈인 시대였다. 그리고 알아낸 그 정보를 이용해 그 지역에서 필요한 물산을 한시라도 빨리 운송해 시세차익을 남기는 것이 요즘 장사꾼들의 상술이었다. 북진여각의 최풍원 대행수도 이를 미리 감지하고 대선 이십 척을 건조하고 삼개에 상전까지 개설했지만 문제는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팔도의 세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궐의 세도가들이었고 그들은 오랫동안 경강상인들과 공생하며 유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역상인인 최풍원이나 삼개에 상전을 운영하고 있는 봉화수 같은 초자가 그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경강상인들은 나라에 있을 큰 행사도 미리 알아내 준비를 하고 있다 그곳에 소요되는 막대한 물량을 공납함으로써 부를 축적했다. 봉화수는 정보력이 없었으므로 경강상인의 하수인 노릇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봉화수가 많은 물량을 단번에 운반할 수 있는 대선 열 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경강상인이 미처 하지 못한 일이나 궂은 일만 불하받아 삼개상전을 겨우 꾸려나가고 있었다. 경강상인들은 자신들끼리 상단을 조직해 계를 운영하며 외지인들에게는 어떤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들이 외지 상인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자신들이 하기 힘들거나 위험한 일들뿐이었다. 당연히 그만큼 위험부담이 컸지만 그렇다고 손을 붙들어 매고 놀 수는 없는 처지였다.

삼개나루 상전의 봉화수는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하며 경강상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용케 버텨내고 있었다. 지금은 봉화수가 어렵더라도 잘만 참고 견디며 지금의 난관을 극복하면 머지않아 한양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최풍원은 확신했다. 최풍원은 모든 남은 힘을 모아 봉화수의 삼개상전에 쏟아 부을 결심을 했다. 그리고 종당에는 북진여각의 모든 것을 삼개상전으로 이전시킬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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