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러고도 구휼미를 실은 배는 며칠을 더 북진나루에 정박해 있었다. 청풍 고을민들에게 나라에서 내린 구휼미가 올라왔음을 분명하게 확인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청풍관아에서는 각 마을마다 인편을 보내 사흘 뒤 구휼미를 받으러 오라고 고을민들에게 전갈을 했다.

한편 북진여각의 별채에서는 최풍원이 동몽회원들을 소집하여 은밀하게 행동지침을 내리고 있었다.

“이번 일은 하나도 입단속, 둘도 입단속이다. 만약 이 일이 새나가면 나도 너희들도 모두 죽는다! 그리고 맡은 바 일은 한 치도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야 한다!”

“예, 대행수어른!”

최풍원의 말에 동몽회원들이 일사분란하게 대답했다.

“일은 그믐인 내일 모레 밤중이다!”

최풍원이 날짜와 시각을 알려주었다.

“가장 중요한 책임은 물개다. 너는 아이들과 함께 백회가 실린 배를 형체도 알 수 없게 파선시켜라. 동시에 모든 백회를 강물에 모조리 풀어라. 배들 중 가운데 있는 큰 배가 백회를 실은 배다. 그 배는 이미 퇴선된 지 오래되어 배를 침몰시키는 데 그리 힘들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동만이와 만기 패는 북진나루에 정박해 있는 배에 서너 명씩 아이들을 배치해 두었다가 횟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실어놓은 여물과 왕겨 섬을 강물에 쏟아버리거라. 기만이와 수봉이는 읍리나루터, 갑기와 돌식이는 북진나루터 강가와 물가 언저리를 돌며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불려놓은 하미를 곳곳에 뿌려 놓거라. 관석이와 상노 패는 동만이 패가 잡쓰레기를 모두 강물에 던져 넣거든 합류하여 구휼미를 실은 배들을 끌고 용산으로 내려가도록 해라. 오슬이는 이 모든 작업이 끝날 때까지 살피고 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즉시 네게 알리거라. 모두들 한 점 실수가 없도록 은밀하게 해야 한다!”

최풍원이 고패 작업을 할 동몽회원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사흘 뒤, 그믐날 밤이 이슥해지자 북진나루에서는 동몽회원들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작업을 진행했다. 달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믐날 밤이라 천지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물개는 동몽회 일행들과 함께 백회를 실은 배를 끌고 소리 없이 강 상류의 황새여울을 향해 올라갔다. 황새여울은 남한강 물길 중에서도 거칠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평생을 물에서 잔뼈가 굵어온 도사공들도 혀를 내두르는 곳이 황새여울이었다. 황새 모가지처럼 긴 수로를 내리꽂듯 쏟아져 내리는 물살은 화살보다 빨랐다. 물길 곳곳에 솟은 바위와 물속에 수도 없이 도사리고 있는 암초는 어떤 배라도 물살에 휩쓸려 부닥치면 성하게 벗어날 수 없었다. 좁고 길다란 여울이 끝나면 그 아래는 학 대가리 모양의 소가 팔랑개비처럼 소용돌이 쳤다. 물개는 황새여울에서 백회를 실은 퇴선을 침몰시켰다. 이미 십 수 년을 물길에 시달리며 나무심도 다 빠지고 골병이 든 늙은 배는 황새여울 물살에 떠밀려지자 개구도 치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휘돌아 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하얀 백회물이 거품과 함께 용솟음쳐 흘러내렸다. 북진나루 앞 청풍호반에서도 구휼미를 실은 배가 침몰했다는 것을 가장하기 위해 은밀하게 작업이 진행되었다. 동몽회원들이 각자의 배에 실려 있는 가짜 곡물 섬을 풀어 강물 위에 쏟아 부었다. 작업이 끝나자 강 상류로 올라간 퇴선을 제외한 모든 배가 어둠을 뚫고 소리 없이 강 하류로 내려갔다. 구휼미를 실은 배들이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북진나루 앞에서는 난리가 났다. 강물은 온통 부서진 배의 파편들과 지푸라기 왕겨들이 빽빽하게 떠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파랗던 그 너른 강물이 쌀뜨물처럼 허옇게 변해 있었다. 강물을 바라보는 고을민들은 아연실색을 했다. 구휼미를 실었던 배들이 모두 파손되어 강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던 나루터 강가에는 허옇게 불어버린 쌀이 모래와 함께 허옇게 깔려 있었다. 굶주린 사람들이 강가에 몰려나와 모래 섞인 쌀이라도 모으려고 저마다 악다구니를 벌였다.

“하늘도 우리거튼 농군들은 버리는구먼!”

“하늘 탓은  왜 하는가? 저게 하늘 탓인가?”

뿌연 강과 난장판이 된 강물을 보며 말했다.

“구휼미를 실은 배가 깨져 저리 됐으니 저제 하늘이 하는 일이지 뭔가?”

“그렇게 순진하니 맨날 당하는 거여. 홍수가 진 것도 아니고, 돌풍이 분 것도 아니고, 여울도 아닌 저런 반반한 강에서 배가 깨졌는데 하늘이 한 짓이냔 말이냐? 인쥐들이 한 짓이지!”

“그러고 보니 어제까지도 잘 떠있던 배가 밤사이에 갑자기 부서져버린 것이 요상하기는 하구먼!”

그제야 강가에서 이 광경을 보던 고을민들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놈의 세상 망하지도 않나!”

이를 바라보는 고을민들이 저마다 탄식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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