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충청매일] 많은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무엇인가 변화되어 더 나은 삶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그 희망을 품고 새해 벽두 전국의 로또 명당에는 영하권에도 긴 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로또 1등에 당첨되어 영끌까지 간 집을 살 것이라는 꿈을 가진 500만명 이상이 로또 복권을 구매하였다. 이들 모두는 희망이 아닌 요행을 바랐을 것이다. 희망은 피동적으로 기다리는 것도 아니며 로또 복권처럼 일어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일으키려는 비현실적 태도도 아니다.

팬더믹까지 온 코로나 19는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 취업난과 함께 지난해에 이어 지속해서 오르는 집값과 전셋값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이 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인간관계를 포기한 5포 세대로부터 희망을 빼앗아 가고 있다.

사회를 보다 활동적이고, 인간적이며, 이성의 방향으로 변혁시키려는 노력에서 희망은 하나의 결정적 요소가 된다. 그것은 국가, 기업, 개인 모든 차원에서 그러하다. 이에 모든 부분의 리더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희망을 보여주는 이상을 가지고 그 비전으로 구성원을 하나가 되도록 할 것을 요구한다.

에릭 프롬(Erich Fromm)은 희망을 잃으면 생명은 잠재적으로 종말을 고하는 것이 된다면서 희망은 생명의 구조와 인간 정신 역학의 본질적 요소로 규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을 위하여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말하며, 설령 일생동안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절망적으로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5포 세대와 코로나 19로 삶이 무너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없는 듯 보인다. 50~300만원의 지원금이 이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한다. 진정한 희망은 로또 복권과 같은 요행도 2분기에 맞을 수 있을 것이란 코로나 백신도 아니다. 희망이 있는 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이다. 그것은 기회가 평등한 사회이고, 노력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건전한 사회이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서울의 아파트 숲에 작은 나뭇가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다.

이 희망의 사회를 위하여 이미 의미를 상실한 이데올로기나 엉터리 구세주, 개혁이름으로 군중을 선동하는 위정자, 절차와 법규만 강조하는 관료제와 정치인들이 가짜 희망을 불어넣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희망이 있는 건전한 사회는 새로운 생명의 모든 징조를 찾아내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이제 막 태어나려는 것을 도와주려고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희망은 사회나 국가에 의해서 피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자기의 의지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신축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해는 트로트 ‘바램’의 가사처럼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수 있는 희망의 혁명이 시작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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