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미 조관재 부사와 관아 아전들은 구휼미의 처결에 대해 모사를 꾸며놓고 난 다음 최풍원을 부른 것이었다. 구휼미를 옮기려면 최풍원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번에 내려온 구휼미를 횡령하여 비어있는 관아 창고를 채워놓을 심산이었다. 오래전부터 관아 창고에는 서류상으로만 곡물이 남아있을 뿐 빈 창고였다. 고을민들의 이름을 가짜로 적어 부사와 아전들이 떼어먹고 채워 넣지 않은 까닭이었다. 조 부사는 굶주린 고을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이번 기회에 그것을 벌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조관재 부사가 부임을 오기 전부터 이미 비어있던 관아 곳간이었다. 그것을 조부사가 책임지고 메워 놓으려는 것이 이상했다. 얼마 전 최풍원이 관아에 공물로 넣은 물품들 대금을 요구했을 때 자신이 부임해오기 전의 일이라며 회피를 했던 조 부사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청백리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비어있는 고을 곳간을 채우겠다는 말도 미심쩍었다.

“최 행수는 구휼미만 여주에서 관아로 옮겨주면 소임을 다하는 걸세!”

“저 같은 장사꾼이 관아에서 시키는 일이나 할 뿐이지 다른 생각이 있을 리 없습니다요.”

최풍원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조관재 부사가 또다시 뜸을 들였다. 최풍원이 어색해하는 조 부사의 몸짓을 못 본 척 딴청을 부렸다.

최풍원은 조 부사가 구휼미를 착복하려고 술수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어떤 방법으로 횡령을 하려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만약 구휼미가 내려온 것을 아는 데 관아에서 풀지 않는다면 고을민들은 폭동이라도 일으킬 정도로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구휼미는 내려왔지만 나누어주지 못하는 이유를 고을민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분명한 물증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서 조 부사는 고심 끝에 북진여각의 최풍원 대행수를 불렀던 것이었다.

“최 행수, 실은 고패를 할까 하네!”

최풍원이 딴청을 부리자 답답해진 조 부사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고패라굽쇼?”

“최 행수가 이번 일을 도와주었으면 해서…….”

“저는 못합니다요!”

최풍원이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자칫 삐끗하면 패가망신할 일이었다. 세곡에 손을 대는 것은 어명을 거역하는 일이니 발각되는 날에는 패가망신 정도가 아니라 목이 달아날 중죄였던 것이다. 더구나 굶주리는 고을민들을 위해 내린 구휼미를 고패 시킨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고패는 배를 가지고 다니는 경강상인들에 의해 주로 자행되었다.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이러한 패행은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저질러졌다. 보통 경강상인들은 짐을 옮겨주고 그에 상응하는 선가를 받았다. 그러나 선가에 만족하지 않고 편법을 통해 그 물건을 통째 먹어치우기 위해 저지르는 패행이었다. 시절이 어수선하자 이러한 패행은 팔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황해도 해주에 사는 도사공 박주태라는 사람은 쌀 칠백여 석을 사선 세척에 싣고 한양의 용산나루에 도착했는데, 마중을 나온 경강상인 정수강이란 자와 공모를 하여 검사용 일백 석을 제외한 나머지 쌀에 물을 부어 곡물을 불리고는 불어난 양만큼을 횡령했다가 탄로가 나 중한 죄를 받은 일이 있었다. 또 경상인 장신민·신해명 등은 선혜청에 납부해야 할 한산군의 대동미 삼백 석을 운반하면서 그중 서른두 석을 착복한 일이 있었고, 경상도 하동에서는 경강상인 배봉장이란 자가 하동 대동미 삼백여 석을 유식했다가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던 중 수십 명의 무뢰배들이 나타나 군졸들을 창과 칼로 위협하고 배봉장을 데리고 도망가 버린 일도 있었다. 대동미를 비롯한 각종 세곡 운송을 청부받은 경강상인들이 도중에 일부나 혹은 전부를 착복하고 숨어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자 나라에서는 이를 엄중하게 처결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경강상인들에 의해 주로 발생한 것은 이들이 한강변을 중심으로 물길을 따라 다니며 장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경강상인들은 주로 나라의 세곡과 양반·지주층의 소작료를 배로 운송했다. 그러다 점차 상품과 화폐 경제가 발전하자 곡물이 주요 상품으로 등장했다. 그러자 경강상인들은 선박을 이용하여 곡물도매상으로 발전했다. 경강상인들은 일천 석에서 이천 석을 넘게 실을 수 있는 배를 수백 척씩 운용하면서 팔도를 돌며 일 년 동안 받는 운임인 선가가 일만여 석이 넘는 사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들이 거대한 자본을 축적하며 거상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정상적인 선가 수입보다는 곡물운반 과정에서 자행한 온갖 부정한 방법이 밑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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